[밀물썰물] 협쟁, 협력과 경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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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은 일에서 탈출할 때가 아니라 경쟁하는 데서 생긴다.” 1989년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된 의 저자인 미국 경제학자 토드 부크홀즈가 2011년 펴낸 에서 한 말이다. 그는 치열한 경쟁이 세상을 굴러가게 하며 인간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고 했다. 경쟁을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봤다. 그의 논리는 남을 이기려는 경쟁심을 악의 원천이나 불행의 씨앗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에게 상당한 충격을 안겼다. 당시 일과 여가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벨(Work-life balance) 풍조가 일던 터라 더욱 그랬다.

유한한 자원과 공간을 둘러싼 모든 생물의 적자생존 경쟁은 당연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대 인류의 무한 경쟁은 낙오자와 실패자를 양산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심화하고 부의 양극화를 키우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기울어진 운동장’처럼 애초부터 불공정한 경쟁이 극심해 ‘금수저·흙수저’ 같은 비유가 나오고 사회적 형평성 문제가 제기된다. 행복한 삶에 필요한 공존과 상생의 가치를 훼손하기 때문이다.

경쟁에 협력이 동반된다면 건강한 경쟁 관계가 형성될 수 있다. ‘코피티션(Coopetition)’이란 단어가 있다. 협력(Cooperation)과 경쟁(Competition)의 합성어다. 우리 말로 줄여서 ‘협쟁’이라 한다. 1944년 미국 수학자 존 폰 노이만과 오스트리아 경제학자 오스카 모르겐슈테른의 공저 에서 생긴 용어다. 승자와 패자를 낳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때로는 경쟁자와 협력해 동반 성장과 상호 이익을 도모하는 경영전략을 말한다. ‘적과의 동침’이다.

최근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과 IT(정보기술) 기업 간 협쟁이 활발하다. 스마트폰 대중화와 2015년 인터넷 전문은행 등장 이후 급성장한 핀테크(Fintech·금융기술) 시장을 잡거나 새로운 수요를 만들 목적에서다. 두 업종이 격돌하게 된 온라인 시장에서 자체 투자로 각자도생하기보다 서로의 강점인 금융 서비스와 IT를 융합하려는 업무 제휴다. 금융권과 IT업계가 합작 회사를 설립하는가 하면 금융사와 핀테크사의 협업이 늘고 있다.

협쟁이 무엇보다 절실한 분야가 정치권이다. 각 정당이 정권을 획득하려고 경쟁하면서도 당면 과제인 코로나19 조기 극복과 민생 안정을 위해 적극 협치해야 할 시점이다. 그런데도 여야는 당리당략만 앞세워 대립과 정쟁을 일삼고 있어 안타까울 뿐이다. 1995년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4류라고 지적한 우리 정치는 아직도 그 수준에 머물러 있다. 강병균 논설위원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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