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누구를 위한 올림픽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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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숨보다 돈이 중하다’… 위험한 축제 강행하는 이유

세계 정·재계 리더들이 모이는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 일명 다보스포럼이 올해는 열리지 않는다. 당초 지난 1월에 열려야 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올 8월로 연기됐다가 결국 취소됐다. 취소 결정이 난 지난 17일(현지 시간) WEF는 “참석자의 건강과 안전이 최우선”이라고 설명했다. 사람들은 다보스포럼의 취소 소식에 ‘당연하게도’ 도쿄올림픽을 떠올렸다. 도쿄올림픽도 원래는 지난해 7월 열려야 했으나 코로나19 때문에 연기돼 올 7월 23일 개막 예정이다. 현재 일본 안팎에서 개최 반대 여론이 비등한데, 다보스포럼 취소로 인해 그 목소리에 힘이 더욱 실리게 됐다.


코로나 하루 확진 5000명
日 국민 83% 개최 반대
정·재계서도 취소론 활활
美도 ‘日 여행 금지’ 권고
불참 도미노 현상 올 수도
수십 조 쏟아부은 일본
취소 요청 땐 손배 청구 당해
취소·연기 열쇠 쥔 IOC
천문학적 수익 포기 힘들어
우리 정부도 선수 보호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스포츠 대국 미국의 발 빼기?

도쿄올림픽과 관련해 주목할 만한 소식이 25일 외신을 타고 전해졌다. 미국 정부가 일본을 ‘여행금지’ 국가로 공지했다는 것이다. ‘여행금지’는 미국 정부가 자국민에게 발령하는 최고 단계 여행경보다. 미국 정부가 일본 내 코로나19 대유행을 얼마나 심각하게 보고 있는지 확인해 주는 사례다. 도쿄올림픽 개막을 불과 두 달 앞두고 내려진 미국의 ‘여행금지’ 경보에 일본 정부는 발칵 뒤집혔다. 국내외의 도쿄올림픽 개최 반대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는 일본 정부에 결정적인 타격을 줄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일본 언론들은 “미국의 일본 여행 금지 조치가 미국 선수단의 도쿄올림픽 불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도하고 있다. 실제로 코로나19를 이유로 도쿄올림픽 불참을 선언한 나라가 이미 있다. 북한이다. 북한은 지난 4월 돌연 불참을 선언했는데, 당시 “코로나 19로부터 선수들을 보호하기 위해 불참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개막 직전 극적인 참가 가능성이 점쳐지기도 하지만, 현재 상황에서 북한이 도쿄올림픽에 참가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스포츠 대국인 미국이 도쿄올림픽에 참가하지 않으면 그에 따라 불참하는 나라가 도미노처럼 이어지지 않을까 우려한다.



■일본에서 더 높은 반대 여론

지금 일본의 코로나19 상황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하루 확진자는 5000명에 육박하고 누적 사망자는 1만 2000명을 넘어선 지 오래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본 정부는 감염 확산을 막기 위해 3번째 긴급사태를 발효했고, 긴급사태 적용 지역은 최근 오키나와현까지 추가돼 도쿄도를 비롯한 전국 10개 광역자치단체로 확대됐다. 이런 판에 올림픽이 그대로 개최되면 코로나19 감염자가 지금보다 3배 이상 급증할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당연히, 일본 안에서 올림픽 개최에 대한 반대 여론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아사히신문이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는 ‘올림픽을 취소하거나 재차 연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83%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사히신문은 아예 ‘여름 도쿄올림픽 중지 결단을 총리에게 요구한다’는 제목의 사설을 26일 자 신문에 실었다. 6000여 명의 의료진이 소속된 일본 도쿄보건의협회는 “병원이 포화 상태라 코로나19 대응 능력이 없다”며 올림픽 취소를 국제올림픽위원회(IOC)에 강력 요청할 것을 정부에 요구했다.

일본 정·재계에서도 올림픽을 취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전·현직 도쿄 기초의원 132명이 “올림픽보다 목숨이 중요하다“며 정부의 결단을 촉구하는가 하면, 한 전자상거래 업체 대표는 도쿄올림픽 개최를 자살 행위에 비유했다. 어느 기초자치단체장은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올림픽을 열면 일본은 멸망할 것”이라고 발언해 파문이 일기도 했다.



■그런데도 강행하는 이유는?

일본 국민 대다수가 반대하는데도 스가 요시히데 총리는 올림픽 강행 의사를 접지 않고 있다. IOC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지난 22일 “도쿄올림픽 개최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희생을 치러야 한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일본 정부와 IOC는 왜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올림픽 개최를 고집할까.

2022년 동계올림픽을 주최하는 중국과의 경쟁의식, 현 스가 내각의 정권 연장을 위한 명분 조성 등 여러 분석이 나오고 있지만, 그보다는 결국은 돈 때문이라는 설명이 더 설득력 있게 들린다.

도쿄올림픽을 취소할 수 있는 권한은 오롯이 IOC에 있다. IOC는 전쟁 등 참가자의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근거가 있을 경우 대회를 취소할 수 있다. 개최국이 대회 취소를 요청할 수도 있지만 이 경우 IOC는 개최국에 손해배상을 요구할 수 있다.

도쿄올림픽이 취소될 경우 IOC는 막대한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다. 가장 큰 부분이 IOC 총수입의 73%에 해당하는 중계권료다. 보험에 들어 있다고는 하지만 그 보상금은 놓치게 될 중계권료에 비하면 턱없이 적다. IOC가 손해배상을 요구하면 일본 정부는 손해의 상당 부분을 물어내야 한다. 그 금액이 최소 1조 7000억 원에 이른다는 분석이 있다. 경기장 등 인프라 구축이나 올림픽을 치르기 위한 각종 간접 비용까지 고려하면 그보다 수십 배 많은 돈이 필요할 수도 있다. 일본 정부가 그 많은 돈을 선뜻 IOC에 내놓기는 쉽지 않다.



■만에 하나의 경우도 대비해야

손 마사요시(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최근 자신의 SNS를 통해 “도쿄올림픽을 누가 무슨 권리로 강행하는가”라고 물었다. 도쿄올림픽을 취소하거나 연기하라는 주장을 에둘러 표현한 것이다. 1894년 시작된 근대 올림픽은 ‘스포츠를 통해 세계 평화에 이바지하는 것’을 이상으로 삼아 왔다. 일본 정부가 도쿄올림픽을 유치한 뒤 정한 공식 슬로건도 ‘감동으로 우리는 하나가 된다’였다. 그러나 도쿄올림픽 개막을 눈앞에 둔 지금의 형편을 보면 올림픽의 그런 이상이나 감동은 무색할 뿐이다.

뉴욕타임스는 얼마 전 “도쿄올림픽이 ‘세계적인 코로나19 감염 이벤트’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 정부나 IOC에게 올림픽을 취소할 권한은 있어도 사람들을 세계적인 감염병 위기로 몰아넣을 권한은 없다. 그런 점에서 우리 정부도 수수방관하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도쿄올림픽이 누구를 위한 것인지 직시해야 한다. 마침 우리 국민 78.2%가 도쿄올림픽을 취소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최근 나왔다.

안타까운 건 올림픽을 꿈의 무대로 여기는 선수들이다. 이들에겐 올림픽 개최 여부가 불투명한 현 상황이 몹시도 곤혹스럽고 불안할 테다. 만에 하나 도쿄올림픽이 취소될 경우를 대비해 올림픽에 청춘을 건 선수들을 위로할 수 있는 방안을 미리 준비해 놓는 지혜가 우리 정부와 사회에 꼭 필요한 시점이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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