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묻다] 도심 참사 책임 없다는 공직사회, 하청 주듯 목숨 대하는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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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죽음-초량 지하차도 침수 희생자 김경민·조상철 씨

서울에서 직장 생활 중이던 김경민(28) 씨는 그날 휴가를 냈다. 부모님을 보러 부산으로 향하던 길이었다. 같은 시각 조상철(57) 씨도 휴가 나온 부사관 딸을 보러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여느 때와 다를 것 없던 일상이었다.

그러나 둘 다 이날 저녁 가족과 만나지 못했다. 부산 동구 초량동 지하차도가 순식간에 빗물에 잠기면서 김 씨와 조 씨 등 3명의 목숨을 삼켰다.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졌다고 믿기 어려운 사고였다.

집 향하다 도심 한복판서 사고
부산시·구청 책임자 회피 일관
“죄책감 오롯이 가족 몫으로 남아
공직자 방관 다른 피해 낳을 것”

검찰은 ‘재난 현장 관리 등 조치가 부실했다’며 공무원 11명을 재판에 넘겼다. 부산시 재난 컨트롤타워 책임자는 처벌을 피한 반면, 중간관리자는 구속됐다. 책임을 통감한다던 구청은 유족과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해자(사망자)의 과실도 있다’고 주장했다. 부산시는 검찰 기소 결정 이후에야 대시민 사과문을 냈다. 가족을 잃은 슬픔이 가시기도 전에 유족은 직무유기를 인정하지 않는 공직사회의 양면성에 치를 떨어야 했다.

지난달 30일 부산 동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초량지하차도 참사 유족 김영일(54) 씨와 조일환(56) 씨는 담담한 표정이었다. 그날의 참사에 대해 수 없이 곱씹어 더는 흘릴 눈물이 없다고 말한다. 김 씨는 김경민 씨의 삼촌이며, 조 씨는 조상철 씨의 친동생이다. 이들은 입을 모아 “공직 사회의 방관적 태도는 분명 또 다른 피해자를 낳을 것”이라고 질책했다.

김 씨 가족은 모두가 ‘가면’을 쓰고 살고 있다고 했다. 초량지하차도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 게 집안의 불문율이다. 김 씨는 “조카가 한순간 세상을 떠난 뒤 가족 모두 속은 곪고 있지만, 서로를 위해 기억나지 않는 척, 모르는 척 이야기를 꺼내지 않는다”며 “사고 책임자들이 져야 할 죄책감과 여파를 유족들이 모두 떠안고 살아가고 있다”고 털어놨다.

참사로 세상을 떠난 김경민 씨는 학창 시절 유학길에 올라 서울의 한 기업에 입사했다. 유독 삼촌을 잘 따르던 터라 김 씨는 그런 조카를 딸처럼 아꼈다.

초량지하차도에서 목숨을 잃은 조상철 씨는 두 살 터울의 동생 조일환 씨에게 아버지 같은 형이었다. 정이 많고 생각이 깊어 주변에 늘 사람이 따랐다고 했다. 그날은 부사관으로 입대한 형의 딸이 휴가를 내고 부산에 온 날이었다. 사고 이후 부산시는 유족에게 사고 설명조차 하지 않았다. 조 씨는 “이후에 김 씨 유족과 사고 브리핑을 듣기 위해 부산시청을 찾았지만, 만나주지도 않았다. 이후 열린 유족과의 회의에서는 ‘할 말이 있으면 말해보라’는 식으로 일관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고 분개했다.

경찰은 변성완 전 부산시장 권한대행을 직무유기 등 혐의로 검찰에 기소의견 송치했고 부산시와 동구청 직원 등을 업무상과실치사 등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그러나 변 전 대행 등 책임자들은 직무유기 등을 인정하기 어렵다는 판단이 내려져 검찰에서 불기소 처분됐다. 검찰은 변 전 대행 등을 제외한 공무원 11명을 재판에 넘겼다. 중간관리자급 공무원들만 재판에 넘겨진 셈이다.

초량 참사를 비롯해 방재 부실 등 공무원의 직무유기 사건 발생은 늘고 있다. 그러나 재판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매년 감소하는 추세다. 대법원과 경찰청 범죄분석 자료에 따르면, 2018년 경찰의 직무유기 입건 건수는 1558건이다. 2015년 1052건에 비해 506건(48%) 늘어났다. 반면 검찰에 기소돼 재판으로 넘겨진 건수는 2015년 765건에 비해 2018년 562건으로 줄었다. 형사법 전문가들은 공무원의 업무 범위가 불분명해 법적 책임과 사회정서 사이 괴리가 생긴다고 지적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사법대학 교수는 “공직 업무라는 특성상 공무원의 과실이 직무유기 혐의에 정상참작되는 부분이 있다. 공무원의 과실과 업무 적정선에 대해 이제는 법과 국민 정서 사이의 적정 수준을 판단할 새로운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곽진석·변은샘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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