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이건희 미술관 유치, 공정 경쟁 내팽개친 문화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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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준 부산시장이 “지금 중앙정부는 문화 균형 발전이라는 시각이 결핍된 것 같다”고 작심 발언을 했다. 정부가 고 이건희 회장의 기부 미술품을 전시하는 미술관의 입지를 수도권에 두려는 듯한 분위기를 보이자 즉각 비판하고 나선 것이다. 부산시민은 물론이고 비수도권 모든 이들의 심정이 이와 같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24일 한 중앙지와의 인터뷰에서 미술관 입지를 두고 “많은 국민의 접근성을 고려하겠다”며 수도권을 시사한 것은 공정 경쟁을 내팽개친 매우 부적절한 행위였다. 문재인 정부의 핵심 국정과제인 국가균형발전을 무시하는 장관과 일부러 이런 분위기를 띄우는 중앙지의 행태에 지방민들은 분노한다.

당장 접근성 고려 수도권 시사 부적절
지역 여야 정치권도 총력 기울여야

부산시가 이건희 미술관 유치 의사를 처음으로 밝힌 뒤에 지자체들이 속속 유치전에 뛰어들어 다소 과열 양상을 보이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부산시가 먼저 유치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면 미술관은 당연히 수도권에 들어섰을 것이다. 전국의 미술관 200개 중 50% 이상이 수도권에 편중돼 있다. 국립현대미술관도 서울, 덕수궁, 과천, 청주 등 4곳에서만 운영하고 남부권에는 전무하다. 수도권에는 삼성의 리움 미술관과 경기도 호암 미술관이 있다. 이건희 미술관까지 추가하는 게 공정한 일인가. 부산의 문화콘텐츠 관련 대학 연간 졸업생 8800여 명은 지역에서는 갈 곳이 없어 수도권으로 빠져나간다. 지방은 날마다 야금야금 소멸하고 있다.

부산시의 계획은 북항을 오페라하우스와 이건희 미술관이 결합된 문화예술관광의 메카로 만드는 것이다.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부산이다. 오페라로 귀가 즐겁고, 이건희 미술관으로 눈까지 즐겁다면 당연히 오고 싶지 않겠는가. 접근성 문제도 장기적인 시각에서 봐야 한다. 부산에는 가덕신공항이 들어서게 된다. 남북철도가 이어지면 유럽에서 대륙의 종착지 부산까지 육로로 올 수 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 K-방역으로 호평을 받은 한국의 부산항은 크루즈선들의 모항도 될 수 있다. 세계적인 수준의 이건희 미술관에 내국인 관광객만 들끓어서야 아쉽다. 어떤 게 이건희 회장의 유지인 문화보국(文化保國)의 길인가.

수도권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있지만 그중에서도 문화예술 분야의 불균형은 극심하다. 이건희 미술관의 수도권 건립은 수도권 집중화를 심화시킬 따름이다. 문화 양극화는 경제 양극화로 이어지기 마련이다. 헌법 제123조에는 ‘국가는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육성할 의무를 진다’고 명시돼 있다. 지자체들이 이건희 미술관 유치전을 벌이는 것은 지역 문화 및 관광 발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지역에 이건희 미술관이 들어서 문화예술 분야 균형발전의 기폭제가 되어야 한다. 부산시뿐만 아니라 지역의 정치권도 여야를 막론하고 미술관 유치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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