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동윤의 비욘드 아크] 공공건축, 총괄건축가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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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상지엔지니어링건축사사무소 대표이사

부산문학관 건립을 위한 범문학계 전문가 간담회가 지난 6일 열렸다. 이날 간담회의 핵심 쟁점은 부산문학관 입지 문제였다. “부산문학관이 신평장림공단에 들어선다면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도대체 왜 아무도 오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걸까. 그 접근성이라는 게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도 생겼다. 해운대구, 동래구, 금정구 등 동부산권에서 오려면 시간이 조금 걸리긴 하겠다. 하지만 서부산권에서 움직이기에는 그리 ‘나쁜’ 거리가 아니다.

기획 단계서 공공성 방향 잡아야
지역에 대한 종합적 이해는 필수
도시 정체성 담고 비전 보여 줘야

블로그나 인스타 등 각종 SNS(사회관계망서비스)로 인해 콘텐츠만 좋으면 어디든 찾아가는 게 지금의 우리다. 신평장림산업단지는 ‘부네치아’(부산의 베네치아)라고 불리며 요즘 인기를 끌고 있는 장림포구 바로 옆인 데다, 홍티아트센터와 지척이고, 을숙도문화회관과 부산현대미술관에서도 가깝다.

지난 19일 부산시가 역사와 문화가 담겨 있는 스토리텔링 갈맷길 15개 노선을 ‘갈맷길 시즌2’로 발표했다. 그중 하나가 다대포 연안에서 현대미술관까지 연결하는 ‘감성 예술길’이다. 낙동강 문화벨트와 문화관광지의 역할도 기대해 볼 만하다. 문제는 대중교통인데, 이 부분은 부산시와 사하구의 의지에 달려 있다.

지역균형발전을 외치면서도 정작 ‘지역 내 균형발전’에 대해서는 이중적인 모습을 우리 사회에서 종종 발견한다. 청년이 떠나고 지방대가 소멸에 처한 이유가 수도권 일극화로 빚어진 비극 때문만이 아니라, 거기에 동조해 내 자식만은 서울로 보내고 싶어 한 우리 지역민의 인식도 한몫했다는 생각이 든다.

부산문학관 입지에 대한 논란을 보면서 생각이 거기까지 뻗어 나간 게 지나친 것 아닌가 싶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부산문학관을 신평장림산업단지에 지을 경우 국비 확보가 유리해진다. 이미 사전 절차를 통과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입지 문제로 왈가왈부하는 건 사안을 다시 원점으로 되돌리자는 것에 다름 아니다.

부산문학관 같은 공공건축물은 예산과 대지의 위치, 건축의 성격 등 많은 것이 기획 단계에서 정해진다. 이 때문에 설계를 할 때 처음 방향 설정이 잘못되면 나중에 고치기 힘들다. 가장 큰 문제는 운영과 관련된 것이다. 적어도 설계 단계에서는 운영 주체가 정해지든지 아니면 운영에 대한 밑그림이 만들어져야 한다. 그래야 재원 낭비를 줄일 수 있다. 특히 공공건축물의 정체성과 콘텐츠 문제는 사전에 치열하게 논의돼야 한다. 주변과의 관계를 긴밀히 하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 가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지역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하다. 지역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공공건축 사업의 방향은 일관성이 있어야 하고, 지역의 특성과 여건에 적합하게 진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살기 좋은 도시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총괄건축가는 그런 이유로 존재한다. 총괄건축가 제도는 국가건축정책위원회가 2018년 10월 발표한 공공건축 혁신의 핵심 과제 중 하나로 2019년부터 확산하기 시작했다. 부산시도 2019년 부산시 총괄건축가 제도를 도입해 총괄건축가와 공공건축가를 선정했다.

부산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담고 미래 비전을 그리기 위해서는 다른 지역에 있다가 잠시 부산에 들러 제안만 하는 총괄건축가가 아니라 지역의 역사와 현안을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총괄건축가가 있어야 한다. “공공건축가들은 집단 지성으로서 지역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한 공공건축의 방향을 함께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총괄건축가는 지역의 공공건축가 중에서 선출하거나, 이들이 낸 후보 중 지자체장이 위촉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김광현 서울대 건축학과 명예교수의 말에 깊이 공감하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지난 2년간 운영된 총괄건축가 제도에 대한 평가도 필요하다. 도시를 새롭게 만들기엔 총괄건축가 임기 2년은 짧다. 그렇다고 임기를 늘리면 이를 감내할 건축가가 있을지 걱정이다. 저마다 본업이 따로 있는 형편에, 총괄건축가로서 할애하는 시간과 노력에 비해 그 보상이 너무 작기 때문이다. 결국 총괄건축가 제도 정착의 핵심은 지자체장의 의지에 달려 있다. 단기간의 성과와 중장기 계획을 함께 봐야 한다.

“인간은 거주함으로써 존재하며, 거주는 건축함으로써 장소에 새겨진다.”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가 남긴 말이다. 인간의 존재론적 가치와 더불어 건축의 시대성과 역사성을 이야기한 것이다. 프랑스 사람들은 조상을 잘 만나서 조상이 남긴 문화재 덕분에 잘 먹고 잘사는 게 아니라 조상이 후손을 잘 만나서 문화유산이 오래도록 지켜질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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