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미술관에 쓰레기가 등장한 이유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오금아 문화부 부장

미술관 전시에서 쓰레기를 보다니!

버려진 것을 활용한 ‘업사이클 아트’도 아니고, 이전 전시에서 나온 폐기물 즉 ‘진짜 쓰레기’를 미술관 전시에서 만나는 날이 올 줄은 몰랐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생태 환경전 ‘지속 가능한 미술관:미술과 환경’은 폐기물 최소화를 선언한 전시이다. 페인트칠도 안 한 조립식 가벽, 곳곳에 노출된 전선 등 ‘공사 중’ 같은 전시장 풍경이 처음에는 낯설다. 작품을 해외에서 운송해 오는 대신 디지털 파일로 출력하고, 미디어 작품마다 소비전력측정기를 부착한다. 새 작품을 만드는 대신 소장품을 공유하고, 작품 안내문은 캘리 작가가 직접 손으로 써서 붙인다. 색다른 전시를 따라가다 보면 지속 가능한 지구를 위해 미술 전시에서 실천 가능한 것을 시도해 보는 뜻에 공감하게 된다.

현대미술관 환경전·시립미술관 기획전
미술과 미술관 역할에 대한 고민 담아
미얀마 지지 전시 등 시민 공감 불러내
‘가치 위한 사회 변화’ 이끄는 예술의 힘

생태 환경전이 인상적인 이유는 환경문제에 대한 미술관의 ‘내부고발’이라는 점이다. 미술로 환경문제를 고발하는 전시는 이전에도 많았다. 하지만 미술관 내부, 전시 자체가 유발하는 환경 문제에 대한 지적은 드물다. 여기서 전시는 2030 MZ세대가 추구하는 환경적 가치와 교차점을 가진다. MZ세대에게 환경보호는 ‘담론’이 아니다. 이들은 환경보호를 직접 행동으로 옮긴다. 이 세대가 앞장서서 실천하는 ‘제로 웨이스트’라는 개념이 미술관 전시에 들어왔다는 점에서 사회 그리고 미래세대와 연동하는 방향으로의 미술관 기능 변화가 느껴졌다.

미술관과 환경, 전시와 환경에 대해 생각하는 행사에 60여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는 점도 의의가 있다. 작가는 작품 완성도를 중요하게 여긴다. 전시 환경을 꼼꼼히 따져야 할 작가들이 이렇게 ‘뭔가 부족한 전시’에 대거 참여했다는 것은 환경보호가 그만큼 절박한 과제라는 뜻이다. 한 작가는 “미술이란 뭘까를 생각해보게 됐고, 환경에 대한 고민이 이후 전시에도 영향을 끼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와 비슷하게 미술관의 사회적 기능을 질문하는 전시가 부산시립미술관에서도 열리고 있다. 코로나 시대 변화된 미술과 미술관의 역할을 고민하는 기획전 ‘이토록 아름다운’이 그것이다. 기존 인간 질서의 한계를 직시하고 대안을 내놓고, 다른 종과의 상호 관계성 확장하기에 나선다. 코로나 사망자를 애도하고 유가족을 위로하는 작품을 통해 재난 시대를 맞아 새로운 실천과 사유의 방향을 모색한다. 전시에서 우리는 비극의 시대에 세상을 등지지 않고 다음을 위한 길을 가는 예술가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매년 5월 18일 국제박물관협의회(ICOM)가 지정한 ‘세계 박물관의 날’을 맞아 국내에서 박물관·미술관 주간 행사가 펼쳐진다. 올해는 14일부터 23일까지 ‘박물관의 미래-회복과 재구상’을 주제로 코로나19와 4차산업혁명이라는 환경 변화 속에서 박물관과 미술관이 미래 사회에 이바지할 수 있는 역할과 기능을 찾는 시간이 마련됐다.

지역 미술계 한 인사는 “미술관이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무엇을 해야 하는가가 요즘 미술계의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만이 아니라 사회 속에서 작동하는 예술, 예술의 사회적 역할과 예술이 가진 힘이 발현되는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움직임은 미술관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지역 작가들이 중심이 된 미얀마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는 전시 ‘미얀마의 봄’이 온오프라인으로 진행되고 있다. 96명의 작가가 작품으로 미얀마 군부 쿠데타에 저항하고 있는 시민들을 응원한다. 전시를 기획한 송성진 작가는 전시가 실질적으로 그들에게 도움이 되느냐는 지적도 있었고, 실제 이에 대해 고민도 했다고 전했다. 미얀마 예술가의 한 마디가 그를 행동하게 했다. “미얀마에서 인터넷이 연결될 때마다 페이스북을 보는데, 멀리서 우리 시위를 지켜보고 지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위로를 받습니다.”

부산시립미술관 ‘이토록 아름다운’전에 코로나 사망자 애도 프로젝트 ‘늦은 배웅’을 출품한 박혜수 작가도 코로나 유가족에게서 비슷한 말을 들었다고 했다. 박 작가는 전시를 통해 유가족을 위로하는 동시에, 전시장에서 ‘늦은 배웅’ 포스터를 나눠주며 코로나 사망자·확진자에 대한 비난을 멈추자는 ‘STOP THE HATE’ 캠페인 동참을 관람객에게 제안한다.

지역에서 진행 중인 이 전시들이 누군가에게는 낯선 이야기일 수도 있다. 그래도 전시장에 가보면 전시 취지에 공감하며, 꼼꼼히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이 꽤 많이 보인다. 공감은 변화의 시작점이다. 세상을 낯설게 보는 예술가의 눈, 그들의 작품이 ‘가치를 위해 같이 사회를 바꾸는 일’로 우리를 이끄는 시작점이 되어주고 있다. chris@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