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나무의 권리 선언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그늘이 사라졌다. 4월 하순 내가 사는 아파트의 벚나무 가지들이 무참하게 잘려 나갔다. ‘강전지’라는 말을 생애에 처음 알게 된 날이다. 잔가지를 비롯하여 수목의 3분의 1을 끊어 내는 방식이라고 한다. 얼마 전까지 아름다운 꽃잎을 휘날리다 초록 잎에 그 자리를 내어 주고 멋진 그늘을 드리운 벚나무 가로수를 전기톱으로 절단하였다. 성큼 찾아온 더위가 더 크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알고 보니 벚나무는 병충해에 약해 전지를 조심해야 하고 전지한 뒤엔 톱신페스트라는 보호제를 바르지 않으면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지열이 높아지는 계절을 앞두고 굳이 비용이 많이 드는 소위 ‘강전지’를 한 까닭이 무엇일까? 이해하기 힘든 사태를 맞아 주민이자 시민으로서 책임을 다하기 위해 이런저런 사례들을 살펴보았다.

아파트의 문제를 벗어나 학교나 유치원 주위를 돌아보아도 예외는 아니었다. 놀랍게도 ‘두목 절단’이라는 새로운 용어를 또 접하게 되었다. 은행나무나 메타세쿼이어의 상단을 자르는 방식으로 생장점을 차단하여 더 못 자라게 하려는 의도의 소산이란다. 학교나 여타의 건물에 뿌리가 입힐 위험이 있을 터이나 이들과 먼 완충지대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를 절단할 이유는 부족해 보인다. 하물며 청소년들이 나무를 통하여 알게 모르게 학습하게 되는 ‘수직으로 상승하는 감각’은 상처를 입게 된다. 어느 도시에선 건물주가 바뀌면서 가로에 선 느티나무를 건물을 가린다는 이유로 벌목하여 원성을 사고 있다고도 한다. ‘닭발 가로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흉하게 처리된 경우는 여러 도시, 각처에서 쉽게 만날 수 있다. 어떤 소도시에서 수목 전지에 드는 한 해 예산이 20억 원이 넘는다는 보도도 있었다. 우리 부산의 각 기초단체에 이와 같은 예산은 얼마나 될까?

아파트 나무 ‘강전지’에 훼손
놀이터 없애고 주차장 만들어
지역민 토론 과정은 아예 생략

시 차원서 관리체계 만들고
풀뿌리 민주주의자 늘어나
시세만큼 환경 관리 관심을


아파트에서 대표자 회의가 전지를 결정한다. 가로수는 해당 기초단체가 관리한다. 어느 경우든 주민 혹은 시민과 충분한 상호작용을 통해 진행하는 과정으로 보이진 않는다. 물론 아파트 주민 상호 간의 이해관계가 있을 수 있다. 또한 바쁜 삶 속에서 무관심이 작동하기도 한다. 그러함에도 수목의 성격이나 경관 등을 고려하는 지역민과의 토론 과정이 생략되고 있다. 이러니 일방의 관리로 강권(coercion)에 가깝게만 느껴진다. 내게 아파트라는 작은 정치가 크게 다가온 연유이다. 난폭하게 가지가 잘려 나간 나무들이 40여 년이 훌쩍 지난 고교 시절에 자행된 두발 단속의 악몽을 떠올리게 할 만큼 폭력으로 다가왔다. 두발 단속이 학생 인권에 저촉되듯이 나무도 주민에게서 부여받는 정당한 생존 권리를 가져야 하는 것은 아닐까?

아파트에서 나무 그늘이 사라지면서 요산 김정한 선생이 생각났다. 선생은 낙동강의 파수꾼이자 아파트 지킴이였다. 살던 아파트에서 노년에도 불구하고 회장을 맡았던 일을 생전에 들려주었다. 그저 명예로 추대되지 않았으며, 사는 동네의 일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해 맡았다는 일화이다. 로컬은 자신의 몸이 있고 가족과 공동체가 있는 장소이다. 서로 앎과 책임을 나누어야 할 영역이다. 그러니까 꽃을 가꾸고 화단을 조성하며 수목을 잘 키우는 일에서 시작해야 한다. 마음이 다른 데 가 있는 사람은 로컬을 가꿀 수 없다. 삶의 가장 구체적인 현장에 정파적인 편견과 분열이 개입하지 않아야 한다. 주민과 더불어 상호작용하는 과정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풀뿌리 민주주의자가 많아져야만 한다.

마침 ‘부산 생명의 숲’에서 일하는 이선아 사무국장의 연락을 받았다. 전언인즉 ‘부산시 나무권리선언’을 준비하고 있단다. 성마르게 발설을 허락받지 않고 말하는 까닭은 이게 필요하고 급한 일이라는 데서 비롯한다. 학생 인권은 물론이고 반려견이나 동물권에 대한 인식도 이미 매우 높아진 현실이다. 이제 나무의 권리가 그 차례이다. 차제에 가로수나 아파트 조경수 등에 관한 전반적인 관리 체계가 만들어지기를 기대한다. 조경 전문가를 아파트 관리에 반드시 포함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구와 군도 가로수와 공유 공간의 조경수 등에 대한 감독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광역시 차원의 합리적이고 체계적인 법과 제도가 만들어져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아파트의 경우에 정부의 공동주택관리법이 있어 큰 틀의 형질변경을 제어하긴 한다. 화단이나 작은 휴게공간, 체육시설과 놀이터 등을 다른 용도로 바꾸려면 소유주와 세입자의 3분의 2가 찬성해야만 가능하게 되어 있다. 늘어나는 주차 요구를 빌미로 이를 변경하려는 시도가 없지 않다. 자동차를 줄이고 숲과 나무를 늘여 가야 하는 기후 위기의 시대를 아직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탓이 아닐까? 아파트값에 기울이는 관심을 그 일부라도 아파트 환경 관리로 돌리면 좋겠다. 주민 스스로 관리의 주체가 되지 못할 때 삶과 일상이 외부의 힘에 종속되어 관리될 수 있다는 자각이 긴요하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