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밖 청소년’ 자립 길 열어 주는 ‘청소년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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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사상구 부산청소년종합지원센터 내 남자단기청소년쉼터 1층에 있는 카페 ‘아띠’에서 가정 밖 청소년들이 제빵 실습(왼쪽)과 바리스타 교육을 받고 있다. 부산청소년종합지원센터 제공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청소년 대부분은 가정 안에 있지만, 가정 밖으로 밀려 나온 아이도 있다. 한 때 가출 청소년이라 불렸던 ‘가정 밖 청소년’은 항상 위험에 노출돼 있다. 거리를 떠돌다 다른 가출 청소년들과 ‘가출팸’을 결성해도 범죄에 노출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심지어 가출팸 내에서도 각종 범죄가 일어난다. 하지만 이들이 안전하게 지낼 수 있도록 24시간 열려 있는 곳도 있다. 바로 청소년쉼터다. 전국 133곳, 부산에는 6곳이 오늘도 불을 끄지 않고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


여가부 추정 10만 이상, 부산 6000명
가장 큰 가출 사유 부모와 갈등 60%
범죄 노출 다반사 사회적 문제 대두
부산청소년종합지원센터 6곳 운영
의식주·진로 등 교육 프로그램 제공
편견·차별 시선 거두고 끌어안아야

■기본 상담부터 진로·진학 교육까지

지난 17일 오후 부산 사상구의 부산청소년종합지원센터(이하 센터). 센터에서는 청소년 3명이 시설 내 갖춰진 농구장에서 농구를 하고 있었다. 곳곳에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우울한 모습의 가정 밖 청소년에 대한 상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1층에 마련된 카페 ‘아띠’가 눈에 띄었다. 바리스타 교육과 함께 청소년들에게 열린 공간으로 사용되는 곳이다. 청소년이면 누구든 이곳을 찾을 수 있다. 다만, 코로나19 이후에는 외부인의 접근을 제한하고 있었다.

센터는 가정 밖 청소년을 위한 단기와 중장기, 일시 쉼터 등을 운영 중이다. 최대 15명을 수용할 수 있는 단기쉼터는 가정 밖 청소년(만 9~24세)이 3~9개월 머물 수 있다. 7명 정원인 중장기 쉼터는 최대 4년까지 지내는 게 가능하다. 아동복지에 관한 법률이 최근 개정돼 올 3월부터 가정학대로 신고되면 부모와 자녀 사이 즉각 분리가 가능하다. 이곳에는 주로 부모의 방임 이유나 주민 신고를 통해 찾아 온 아이들이 많다.

쉼터는 가정 밖 청소년에게 기본적인 의식주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재가출을 막고 사회와 연결하기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도 운영 중이다. 아이들의 상황에 맞춘 상담과 문제해결을 위한 치료·예방 활동이 대표적이다. 또 주기적으로 성과 약물, 범죄, 흡연 교육을 비롯해 예절, 대인관계, 사회적응 등에 대한 교육도 이뤄지고 있다.

센터가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부문은 가정 밖 청소년들의 자립심을 키워주는 것이다. 특히 센터는 가정 밖 청소년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거나 원하는 진로를 할 수 있도록 최대한 지원해 주는 역할을 한다. 센터는 이를 위해 진로 관련 시설 연계와 자격증 취득을 전폭적으로 돕고 있다. 오는 10월에는 중장기 쉼터가 정원을 3배 이상 대폭 늘려 ‘청소년 자립관’으로 탈바꿈한다. 재가출을 막고 자립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 성인 이후 주거 지원까지 연계해준다는 것이 목표다.

이곳에 머무는 청소년들의 만족도도 높다. 현재 단기·중장기 쉼터에는 16명이 머물고 있다. 7개월째 쉼터에서 지내고 있는 A(18) 군은 “이곳에 오기 전에는 너무 힘들었지만 우선 의식주가 해결돼 너무 좋다”면서 “고등학교 자퇴 후 검정고시를 취득했고, 대학 졸업 후 나와 비슷한 상황의 청소년에게 도움을 주는 청소년 지도사가 되고 싶다”고 전했다.

부모와 진로 문제로 갈등을 겪다 이곳에 온 손 모(21) 군은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단체 생활을 하기 때문에 자유롭지 않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안다”면서도 “하지만 직접 체험해보면 누릴 수 있는 자유가 훨씬 많고, 무엇보다 교육받을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줘 인생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부모 방임·빗나간 훈육의 그늘

A 군은 어머니, 8형제와 함께 살았다. 그의 어머니는 아이들을 돌보지 않았다. 아이들은 식사도 자주 걸렀고, 청소가 되지 않은 지저분한 집 안에서 방치됐다. 이를 본 이웃 주민들이 가정 학대를 의심해 아동보호전문기관에 이 사실을 신고했다. 결국 지난해 말 A 군은 미성년자 동생 세 명과 함께 청소년시설로 거처를 옮기게 됐다.

B(20) 씨가 중학생일 때 그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부모와 갈등을 겪었다. 부모는 인문계 고교 진학을 강요했고, 도저히 타협점을 찾을 수 없었다. B 씨는 집 밖으로 나와 한 달가량 노숙하다 우연히 알게 된 청소년쉼터에서 2년간 머물렀다. 이후 다시 집으로 들어갔지만, 부모의 강요는 여전했다. 결국 B 씨는 올해 초 다시 청소년쉼터의 문을 두드렸다.

B 씨는 “대학을 졸업하고 제과제빵 자격증을 따려고 준비하고 있다”면서 “대학 졸업 후 군대를 마치면 디저트 카페를 차리고 싶다”고 말했다.

여성가족부가 추산한 전국의 가정 밖 청소년은 약 10만 6000명으로 부산에는 6000명이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실종·가출 신고(9~19세)는 총 2만 875건이다. 부산에서는 1579건으로 집계됐다.

청소년 가출 이유는 양육태도나 진로 문제 등으로 인한 부모와의 갈등이 60.7%로 가장 많다. 이어 부모간 갈등(18.5%), 기타(4.8%), 우울·불안·스트레스(4.7%)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부산남자단기청소년쉼터 김해정 소장은 “아이들이 집 밖으로 나오는 이유는 대부분 부모의 방임이나 잘못된 훈육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이들을 돌보고 있는 기관 관계자들이 꼽은 가장 힘든 점은 ‘가정 밖 청소년=비행 청소년’이라는 편견과 낙인이다. 한국청소년상담복지개발원 이기순 이사장은 “청소년복지시설 지원을 내실화하고 쉼터를 퇴소한 이후에도 스스로 삶을 꾸릴 수 있도록 주거와 자립을 돕고 있다”면서 “하지만 무엇보다 이들이 가정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이해해주시고 가정 밖 청소년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시선을 거둬야만 한다”고 전했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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