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션 뷰] 조선·해운산업, 틀에 갇히면 혁신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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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광헌 현대중공업 엔진기계사업본부 사업대표

10여년 전 세계 조선산업이 급격히 침체하자 한국 조선업의 쇠퇴를 우려하는 경고가 잇따랐다. 글로벌 해운산업의 장기 침체와 선박 수요 감소, 중국 조선사들의 급성장과 물량 공세 등으로 한국 조선사들의 경쟁력이 약화됐다는 이유에서다. 중국 조선업이 값싼 노동력을 바탕으로 한 가격 경쟁력과 기술 축적을 통해 한국 조선기술을 바싹 추격했다고 보는 견해도 있었다. 이후 한국 조선업은 크고 작은 업체 할 것 없이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고 있다.

최근 글로벌 물동량이 증가하고 신조 선박의 발주가 활기를 띠고 있다. 세계 조선·해운 경기의 본격적 회복으로 판단하기는 아직 이르지만, 장기 침체에서 벗어나고 있음을 조심스럽게 예견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2021년 세계 경제 성장률이 6%대로 예측되자 지난해 말 기준 신조 선박 발주가 975척 이뤄졌다. 지난달 컨테이너 운임지수가 작년 동기 대비 2배 이상 상승한 2833포인트를 기록하고 선가지수도 133포인트 상승했다.

기후변화로 바다 환경 규제 강화돼
해양산업 새로운 생태계 등장 전망
한국 기업에 위기이자 재도약 기회
변화·신기술 개발로 시장 선점해야

이와 때를 같이해 우리나라 조선·해운산업은 전환기를 맞고 있다. 지난 수년간 혹독한 시련을 극복하며 환경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신기술 개발에 힘써 재도약 기회를 노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스마트 제조공법을 통한 원가 경쟁력 강화와 LNG(액화천연가스) 특수용접 기술, 전자제어 설계기술, D/T(Digital Transformation) 플랫폼 기술 개발 등에서 세계 우위의 경쟁력을 확보했다. 따라서 중국이 야심 차게 우리를 추격하더라도 선박의 핵심 기술과 제조기술 격차를 줄이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세계 해양 분야의 환경기준 강화도 한국 조선·해운업에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것이다. 국제해사기구(IMO)는 2008년 이후 고유황유 같은 대기오염 유발 물질이나 이산화탄소 배출 등에 대한 규제를 강화해 왔다. 나아가 오는 2030년까지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를 2008년 대비 40% 감축하고 2050년에는 50%까지 감축하기로 했다. 유럽연합(EU)은 이보다 더 강력한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를 예고하고 있다.

이 때문에 기존 선박의 연료 효율성을 높일 수 있도록 개량하거나 새 동력원을 가진 선박을 개발해야 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LNG 추진 선박의 혼합 연료 추진 기술 개발과 탈탄소 연료용 암모니아와 수소 등 새 연료 추진 체계의 개발이 시급해졌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세계 최고의 조선 기술력과 제조 역량을 보유한 우리나라는 급변하는 환경을 도약의 기회로 삼아야 할 것이다. 우리 조선·해운업계가 친환경 선박에 대한 수요 증가에 잘 대비할 때다.

이를 위해 첫 번째로, 미래 친환경 선박 제조 기술을 고도화하고 이미 개발된 온실가스 감축 기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 혼합 연료 등 저탄소 선박기술 개발, LNG·전기·하이브리드 핵심 기자재 기술의 국산화와 고도화, 수소·암모니아 등 무탄소 선박기술과 연계되는 선박 및 기자재 기술의 융합화와 상용화 기술 개발, 상용화된 핵심 기자재의 국산화·고도화를 통한 기술 경쟁력 강화 등이다.

두 번째는 무탄소 연료 개발을 위한 기술 확보다. 혼합 연료 추진 기술과 함께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기술을 동시에 개발해야 한다. 세 번째로는 개발 초기 단계인 무탄소 선박의 연료와 핵심 기자재에 관련된 기술을 확보해 기술력을 높이는 일이 중요하다. 이는 산·학·연 협력을 통해 선제적으로 개발할 필요가 있는 시급한 과제다. 우리가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기존 유류 선박 대비 70% 이상 저감하는 기술을 확보한다면, 국내 조선·해운산업의 획기적 성장은 물론 세계 해양업계 주도가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에 제대로 부응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정확한 현실 진단과 지속적인 기술 혁신이 요구된다. 기존 틀에 갇혀 있을 경우 세계 시장의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혁신을 장담할 수 없다. IMO의 온실가스 규제 강화와 EU의 이산화탄소 배출권 거래제(EU-ETS) 시행에 대비해 유류 선박에서 친환경 연료 선박 체계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마땅하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과감한 변화와 혁신으로 환경친화적인 스마트 선박을 개발해 보급하고 스마트 운항관리 체계 구축 시기를 앞당겨 세계를 선도하려는 노력이 절실하다.

지구온난화 등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려는 탄소중립의 가치는 앞으로 세계 해양의 판도를 완전히 바꿔 놓을 게 분명하다. 공해 선박 운항 규제, 친환경 스마트 선박 개발과 보급, 무탄소 연료 기술력 확보 등은 필연적으로 다가온 새로운 해양 생태계다. 이는 위기가 아니라, 잘 활용해야 할 기회다. 여기에 맞춰 한국 조선·해운산업의 깊은 고민과 혁신 의지, 강한 실천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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