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광야에 두 발로 생을 버티는 당나귀는 나 자신”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광야 위에 선 당나귀.

화면을 뚫고 나올 듯 거침없던 예전 모습 대신 거친 대지의 일부가 되어 홀로 서 있다. 사석원 작가는 “삶 자체가 내일 어찌 될지 모르는 것이다. 광야는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인생을 은유적으로 표현한다”고 말했다. 사 작가가 3년 만에 부산에서 개인전 ‘새벽광야’를 열고 있다. 해운대구 중동 그랜드조선 부산에 위치한 가나부산에서 열리는 전시는 30일까지 이어진다.

2018년 ‘정면돌파’에서 화면을 가득 채웠던 동물들이 이번 ‘새벽광야’에서는 조금 뒤로 물러선 모습을 보인다. 사 작가는 “거대한 삶의 흐름을 중점적으로 부각하려는 의도”라며 “배경의 일부가 된 당나귀는 인생에 대처하는 나의 모습을 상징하는 존재로, 삶을 살아나가는 것은 결국 개인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사석원 작가 ‘새벽광야’전
가나부산에서 30일까지 열려
“광야는 인생의 은유적 표현
삶이란 결국 개인이 사는 것
겹겹이 쌓인 물감은 삶 흔적”

“새벽 광야에 두 발로 버티고 선 당나귀는 곧 해가 뜰 것이라는 기대를 하고 ‘삶을 당당히 헤쳐나가겠다’는 의지를 다져보자는 뜻이기도 합니다.” 사 작가의 그림에는 당나귀, 염소, 닭, 부엉이 같은 동물들이 늘 등장한다. 그는 “당나귀는 토끼가 어른이 된 것 같은 모습인데, 거친 환경에도 잘 적응하고 힘이 세다. 고집도 있어서 하기 싫으면 꼼짝도 안 하는데 한마디로 매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에서 사 작가는 대지를 거칠고 두껍게 표현했다. 날것 상태의 원색 물감을 뿌리고 쌓아 무겁게 보이지만, 외로운 삶을 위로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 “겨울철 솜이불처럼 두툼하게 덮어보고 싶었습니다. 색을 다양하게 쓴 것은 광야가 품은 여러 존재를 표현한 겁니다.” 광야를 자세히 보면 잡초도 있고, 상처 난 자갈도 있고, 작은 들꽃도 있다. 또 그 속에서 살아보려 애쓰는 벌레도 있다. 켜켜이 쌓인 물감처럼 인생도 단조롭지 않음을 뜻한다.

‘새벽수탉’ ‘새벽호랑이’ ‘새벽부엉이’ 등 다수의 작품 제목에 ‘새벽’이라는 단어가 들어간다. 새벽은 작가가 작업을 마치는 시간이기도 하다. 차가운 공기를 가르며 새날이 열리듯 덤불 위를 뛰어넘는 ‘새벽토끼’에서는 힘찬 생명력이 느껴진다. 지리산의 ‘새벽소나무’를 그린 그림 앞에서 사 작가는 “눈 내리는 겨울 새벽의 짱하고 차가운 바람이 느껴지느냐”며 웃었다.

“아프리카 여행 때 만났던 야생의 눈빛이 떠오릅니다.” 순간의 차이로 생사가 엇갈리는 그곳에서 사 작가는 ‘매 순간이 절정의 순간이고, 중요한 시간’이라는 교훈을 얻었다. “삶은 치열합니다. 그만큼 소중하고 또 존중받아야 합니다. 그림을 통해 아무리 어려워도, 그래도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습니다.”

사 작가는 전시를 마치면 한동안 휴식을 취할 거라고 말했다. “오래전 펄 벅의 소설 를 흑백영화로 봤는데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도도히 흘러가는 강물이 인생이고, 그게 모여 세상이 되는 것을 표현했더군요. 다음에는 광야를 더 장엄하게 그려보고 싶습니다. 그러면 당나귀는 더 작아질 수도 있겠지요.” ▶‘사석원: 새벽광야’=30일까지 가나부산. 051-744-2020.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