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초 서인과 인조 쿠데타로 ‘효치국가’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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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후의 반역 / 계승범

은 17세기 초 조선 광해군 때 인목대비의 폐위 논쟁 과정을 집중적으로 살피고, 이후 서인(西人)과 인조의 쿠데타가 일어나 효치국가가 탄생했다는 주장을 펼치는 책이다. ‘효치(孝治)국가’는 유교 국가의 양대 이념 중에서 충(忠)의 깃대는 꺾이고 효(孝)의 깃발만 힘차게 나부끼는 ‘이상한’ 유교 국가로의 변질을 개념화한 것이다. 조선 후기는 이런 이상한 효치국가였다는 소리다.

‘효가 충을 제압해버린’ 이상한 유교 국가
‘충’이 쇠락하면서 항상 분열했던 조선

그 연원은 선조에 있었다. 선조 대는 조선이 임진왜란 발발 등으로 새로운 시대를 넘는 분수령이었다. 하지만 선조는 무엇보다 조선 최초의 방계 혈통 왕이었다. 그는 명민한 군주였으나 한편으로 콤플렉스와 질투의 왕이었다. 선조의 견제를 참으로 혹독하게 치른 이가 또한 광해군이었다. 광해군은 16년 세자 시절 동안 가슴에 대못이 박혔다. 왕위에 오른 광해군이 그 대못을 빼는 과정이 임해군과 영창대군를 제거하고, 이어 7년에 걸쳐 자신의 생모를 왕비로 추숭하고, 그 마지막에는 자기보다 9살 어린 인목대비를 폐비시키는 것이었다. 깊게 팬 상처는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인목대비 폐비 과정은 참으로 주도면밀했다. 광해군이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폐위논쟁은 1차(1614~1615), 2차(1617~1618)에 걸쳐 ‘전례 논쟁’을 하면서 서서히 진행시킨다. 그 과정에서 대북(大北) 중심의 폐위론자들은 반대론자들을 거의 일망타진하다시피 정계에서 축출시킨다. 폐위 논쟁의 핵심은 ‘충이냐 효냐’였다. 충은 광해군이었고, 효는 인목대비였다. 칼을 광해군이 쥐고 있으니 충으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결정적으로 뒤집어진 것이 1623년 서인 세력에 의한 인조 쿠데타였다. ‘역사’가 뒤집어져 버린 것이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쿠데타의 의미를 ‘효가 충을 제압해버린 것’으로 본다. 이후 조선 후기의 효치국가가 이 쿠데타로 탄생했다는데 숙종 영조 정조의 강한 왕권도 잠시 반짝했으며 결국 한계적이었다는 것이다. 대한제국 시기 일본군과 싸우던 의병장 이인영이 부친의 부고를 듣고 낙향한 사례가 효 중심의 가치를 방증하는 예라고 한다.

그래서 어쨌다는 건가. 일본은 천황에 대한 ‘충’을 내세워 근대적 국민국가를 건설하는 역사적 역설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선은 그러지 못했다. ‘충’이 쇠락하면서 항상 분열했고, 심지어 식민지 시기에도 좌우 분열했으며 결국 분단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저자는 한국사에서 조국과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충을 강조하고 온 국민을 하나로 묶은 것은 한국전쟁 이후 남북한이 별도로 추진한 ‘국민국가 만들기’에서였다고 본다. 하지만 현재의 사회주의 북한은 3대를 잇는 ‘가족국가’로 볼 수 있는데 조선 후기 효치국가의 연장선, 혹은 부산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박정희의 경우, 일본을 본떠 충을 지나치게 강조하면서 도를 넘어선 유신 독재로 나아갔다고 본다. 저자는 서강대 사학과 교수다. 계승범 지음/역사비평사/384쪽/1만 98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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