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이재용 백신 특사 이뤄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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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동진 서울경제팀장

올 1월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구속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면을 두고 기류가 바뀌고 있다. 사면에 당초 “검토 계획이 없다”던 정부·여당에서도 재보선 이후 불리해진 여론 반전과 글로벌 반도체 수급난 속에서 이 부회장의 ‘백신 특사’ 역할론 등이 거론되면서 이젠 ‘사면 검토’ 쪽으로 돌아선 분위기다.

사면의 키를 쥔 문재인 대통령도 지난 10일 기존 청와대 공식 입장을 깨고 “국민의 의견을 충분히 듣겠다”며 사면 가능성을 열었다. 민심의 흐름을 면밀히 검토한 후 판단을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경제계뿐 아니라, 종교계에서도 그런 사면을 탄원하는 의견을 많이 보내고 있다”고도 했다.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 사면론에 관해 공식석상에서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백신 특사 역할론 대두…이젠 사면검토
문 대통령도 “여론 수렴” 가능성 열어
미국에 반도체 투자…한국은 백신 수급
2009년 이건희 ‘IOC 특사’ 이상 절실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도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론이 확산하고 있다. 여권의 대선주자로 분류되는 이광재 의원은 “공개적으로 검토할 때”라며 사면론에 힘을 실었다.

이처럼 기류가 바뀐 것은 부동산 정책 등 각종 실정에 미국산 백신 수급까지 비상이 걸리면서 정부·여당에 대한 민심이 급격히 나빠졌기 때문. 백신 수급 문제 해결사로는 이 부회장이 적역으로 떠올랐다. 지난해 정부가 화이자 백신 2000만 명분을 추가 계약하는 과정에서 이 부회장이 화이자 CEO 인맥을 활용한 것으로 알려진 때문.

21일 한미정상회담에 삼성전자 경영진이 초청된 것도 양국 모두 삼성과 이 부회장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는 것과 무관치 않다. 이 자리에서 삼성이 미국에 반도체 투자를 하고, 한국은 반대급부로 대량의 백신을 받는 상황이 연출될 수 있다.

사실 구속된 지 불과 4개월 만에 사면을 거론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백신 적기 공급이 국가 경제 내지 국민 생명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조기사면론은 결코 섣부르지 않다. 또한 국가 미래 먹거리인 반도체에 대한 대규모 투자도 그의 실행 의지에 달려있다.

삼성전자는 지난 13일 메모리뿐만 아니라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에서도 1위 자리에 오르기 위해 기존 133조 원인 투자비를 171조 원으로 38조원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삼성전자가 연평균 메모리 반도체 시설투자에 20조 원 이상 투입하는 것을 감안하면 삼성전자가 370조 원 이상을 투자하는 셈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규모다.

또한 고 이건희 회장 재산을 상속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모습도 놀라운 수준이다. 가족회의를 통해 결정된 것이겠지만 12조 원의 상속세 외에 수조 원에 달하는 국보급 미술품과 소아암 환자 등을 위한 기부 등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2019년 한일무역갈등으로 인한 일본의 반도체 수출 규제 때 보여준 정공법도 대단했다. 국내 소재 기업에 대한 지원을 통해 반도체 소재 개발로 국산화에 한몫했고, 오히려 일본 기업들이 한국 내 공장을 세우는 바람에 새로운 고용창출까지 이뤄졌다. 정부도 결코 할 수 없는 일을 일개 기업이 해낸 것이고 그 뒤에 이 부회장의 뚝심이 작용했다. 당시 보여준 결단력과 실행력에 향후 백신 공급, 반도체 투자 등의 역할에 대한 기대치도 큰 상황이다.

노무현 대통령 이후 재벌 총수에 대한 사면은 꾸준히 이뤄졌다. 하지만 문 대통령 취임 후 총수 사면은 한 차례도 이뤄지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과거 대선 후보 시절 뇌물 등 5가지 중대 범죄에 대해선 사면을 제한하겠다고 공약을 내건 것과 무관치 않다. 하지만 사면 카드를 검토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는 것이다.

문 대통령이 사면을 선뜻 결정하지 못하는 것은 공약 외에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과의 형평성도 포함된 듯하다. 하지만 국가를 위해 현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결정부터 먼저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이다.

공교롭게도 이 부회장의 백신 특사 상황은 두 번이나 실패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를 위해 이건희 삼성 회장에 대해 2009년 이뤄진 이른바 ‘IOC 특사’와 묘하게 오버랩된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결정은 올림픽 유치 성공으로 이어졌다. 이 부회장에 대한 국민적 기대도 당시 못지않다. 국민의 생명이 달려있기에 12년 전보다 더 절실하다.

데일리안과 시사저널이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이 부회장 사면에 대한 찬성 의견은 각각 70%, 76%가 나왔다. 반대 의견은 20%대에 그쳤다. 경제계·종교계에 이어 이 부회장을 사면해 달라는 청와대 청원까지 등장했다. 이례적인 상황에 이제 대통령의 결단만 남은 셈이다. dj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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