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5월의 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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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혜 배우·경성대 연극영화학부 교수

10대 시절, 5월은 무척 바쁜 달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어린이날 가족과 함께 갈 장소를 물색하느라 정신없었다. 놀이동산, 테마파크, 물놀이, 공연 등 그동안 친구들의 경험담과 TV에서 재미있게 봤던 모든 것들을 종합해서 가장 하고 싶은 것을 부모님께 말씀드리곤 했다. 5월 5일은 유일하게 어린이에게 모든 선택권이 주어지는 날이니만큼, 가고 싶은 어디라도 먹고 싶은 어떤 것이라도 가능한 날이었다. 대기 줄이 길게 늘어선 놀이공원이든, 사람 구경 나온 듯 북적이는 테마파크든 상관없다. 드넓은 온천수에서 하루 종일 지겨울 때까지 물놀이를 해도 ‘그만하고 가자’는 부모님의 목소리도 없다. 이런 음식이 뭐가 맛있냐며 늘 양식을 반대하시는 아빠의 의견도 더 이상 내세울 수 없다. 5월로 달력이 넘어가는 순간, 5월 5일까지는 기대와 희망에 부푼 어린 필자만의 세상 속에서 바쁘고도 즐거운 날들을 보내곤 했다.

어린이날 기대와 희망으로 가득
부모·스승님 선물 고르는 큰 기쁨
5월은 사랑과 마음을 느끼는 시간


바쁜 일상, 사랑 담은 손편지 사라져
카톡 선물·문자로 배달되는 편리함
촌스러움과 정성 더해지면 금상첨화



중학생 때는 그동안 모아 둔 용돈으로 부모님 맘에 쏙 드는 어버이날 선물을 고르기에 바빴다. 부모님께 무엇을 해 드린다는 느낌은 마치, 성인이 되어 직접 번 돈으로 감사함을 전하는 것 같은 뿌듯함이 있었다. 왠지 어른이 된 것 같은 생각에 5월이 되면 부모님께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이리저리 몰래 눈치를 살피며 찾아 헤맸다. 부모님 옷장을 열어 가지런히 나열되어 있는 아빠의 넥타이 컬러들을 훑어보거나 엄마 스카프 무늬 패턴을 유심히 보면서 좋아하시는 취향을 가늠해 보았다. 탐정처럼 스킨, 로션 향을 맡아 보며 선호하실 만한 더 좋은 브랜드를 찾아보기도 했다.

그리곤 어버이날이 되면 출근하시는 아빠와 엄마께 카네이션을 달아 드리고 고심해서 고른 선물과 함께 그동안 짜증 내고 투정 부렸던 지난날들에 대한 죄송함과 쑥스러워 직접 말하지 못했던 감사함을 편지에 적어 드렸다. 흐뭇해하시는 부모님의 모습을 볼 때면 늘 받기만 했던 딸에서 성숙하고 든든한 딸이 된 것 같아 새로운 기쁨과 만족감이 느껴졌다.

고등학생 때는 스승의 날 깜짝 이벤트를 위해 온 신경을 쏟았다. 대학 입시로 공부에 민감한 학생들을 위해서 하루하루 컨디션이 어떤지 꼼꼼히 관심 가져 주시는 선생님께 유일하게 감사함을 전달할 수 있는 날이 바로 스승의 날이었다. 이날만큼은 학생들이 선생님들께 세심한 신경을 써 드릴 수 있기에 5월이 되면 매년 반 친구들과 함께 15일 스승의 날을 위한 감동적인 이벤트를 구상하곤 했다. 선생님이 수업에 들어오시면 모르는 척하고 15분 정도 수업을 듣고 있다가 판서하고 돌아서시는 선생님을 향해 반 친구들이 합창으로 스승의 은혜를 부르며 카네이션을 가슴에 달아 드리고 편지를 읽어 드렸다.

담임 선생님뿐 아니라 수업에 들어오시는 모든 선생님께 똑같이 해 드렸다. 반을 담당하고 있지 않은 선생님들은 생각지도 못한 이벤트에 눈물을 흘리기도 하셨고 그 모습에서 느껴지는 진한 감동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말로 표현하지는 않았지만, 서로에 대한 고마움과 끈끈하게 묶여 있는 정이 마음으로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5월은 표현이 서툰 그동안의 시간을 탈피해 사랑의 마음을 전할 수 있게 기회를 주는 달인 것만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세상이 달라졌다.

바쁜 생활 속에 쫓기다 보니, 감사함은 간단한 문자 메시지 한 통으로 전하고 추가로 이모티콘 하나 더하면 그게 최상의 표현이 되었다.

‘높고 높은 하늘이라 말들 하지만 나는 나는 높은 게 또 하나 있지. 낳으시고 길으시는 어머님 은혜 푸른 하늘 그보다도 높은 것 같애.’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

노래 한마디, 편지 한 구절에 다양한 은유로 풍부한 표현을 가득 담았던 예전과는 분명 다르다.

말로는 미처 하지 못했던 은혜로운 마음을 어떻게 하면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글을 썼다 지웠다 반복하며 적었던 편지는 사라진 지 오래다. 카네이션 한 송이를 사다 줄기 끝을 잘라 은박지로 돌돌 말은 후 옷핀을 달아 가슴꽂이용 카네이션을 손수 만들고, 고심해서 고른 작은 선물을 정성스레 직접 포장했던 예전의 아마추어적인 모습은 더 이상 보기 힘들어진 듯하다.

구구절절한 표현은 빼고 직접적이고 솔직한 표현이 담긴 문자 메시지와 카네이션 이모티콘, 그리고 카톡으로 배달되는 간편한 선물로 편리함이 더해진 세상!!

시대에 걸맞은 한층 세련되어진 ‘5월의 변화’에 약간의 촌스러움이 묻어 있는 투박한 정성 한 스푼이 더해진다면 금상첨화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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