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장미꽃과 자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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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어릴 적 읽은 영국의 우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한 임금님이 우연히 창밖을 보니 아무것도 없는 정원 한가운데서 경비병 하나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이다. 의아하게 여긴 임금이 경비병을 불러 이유를 물었더니 자기도 이유는 모르고, 다만 여기서 저기까지 왔다 갔다 하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대답했다. 임금이 지휘관을 불러 똑같이 물었더니 역시 똑같은 대답이었다. 심지어는 대신들 가운데 누구 한 사람 그 이유를 아는 이가 없었다. 도대체 무슨 연유일까? 먼 옛날 꽃을 매우 사랑하는 여왕님이 있었다. 여왕은 정원 한 곳에 꽃밭을 꾸몄는데, 지금까지 본 적 없는 아름다운 장미꽃이 피었다. 누가 장미꽃을 꺾을까 걱정이 된 여왕은 경비병을 불러 꽃밭 여기서 저기까지 왔다 갔다 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겨울이 되어 장미꽃은 시들고 세월이 흘러 여왕도 세상을 떠나고 꽃밭은 잔디밭이 되었다. 하지만 그때 여왕님이 내린 명령은 그대로 남아 아무것도 없는 정원 한가운데서 이유도 모른 채 경비병 혼자 왔다 갔다 했던 것이다.

코로나19에 방치된 공공자전거
영국 빈 정원 경비병 우화 떠올라

새 서울·부산시장, 기대 커서일까
단체장 평가서 3·4위 차지 기현상
거창한 공약보다 잊힌 주변 챙기길

우리 집 근처에는 자전거 도로가 있어 꽤 많은 이들이 이른 새벽부터 저녁까지 자전거를 탄다. 자전거 도로 초입에는 공공자전거 대여소가 있는데, 지난해 봄부터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운영이 중단됐다. 그 앞을 지날 때마다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자전거들이 비바람을 맞으며 먼지를 덮어쓴 채로 녹슬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집이 더 빨리 낡듯이 사람이 쓰지 않는 물건일수록 더 빨리 더 심하게 낡고 못 쓰게 되는 법이다.

궁금한 일은 코로나19 사태와 공공자전거 대여가 무슨 상관인가 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타던 자전거를 타면 코로나에 감염된다는 뜻일까? 하지만 서울시가 운영하는 ‘따릉이’를 비롯해 많은 지자체들이 공공자전거를 시민들에게 대여하고 있다. 서울 시민이나 광주 시민은 공공자전거를 타도 감염되지 않는데, 부산 시민만 유달리 자전거 바이러스에 취약한 유전적 특질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정 감염 확산이 걱정된다면 더 자주 소독하고 더 꼼꼼히 관리하면 될 일이 아닌가?

코로나19 사태가 심각하니 자전거 대여를 중단할 수는 있다고 하자. 그렇더라도 자전거는 계속 관리해야 옳지 않은가 말이다. 먼지도 닦고 기름칠도 하고 언제든 다시 탈 수 있는 상태여야 할 텐데, 쇠사슬로 묶은 채 흉물로 버려두니 볼 때마다 처연한 마음이 들 뿐이다. 내가 걱정하는 일은 과연 부산시나 구청의 공무원들 가운데 이 자전거들을 기억하는 이가 한 사람이라도 있느냐는 것이다. 아마 이전에는 자전거를 관리하는 담당 공무원도 있었을 테고, 코로나 사태가 심각하니 운영을 중단하는 지시를 내린 이도 있었을 테다. 나중에 공공자전거에 대해 부산시의 높은 분들께 물으면 마치 코미디의 한 장면처럼 “거기에 자전거가 있어요?” 하고 되묻지나 않을까?

단체장들에 대한 평가에서 취임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오세훈 서울시장과 박형준 부산시장이 나란히 3·4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황당한 일이기는 하지만 기존 단체장들에 대한 실망과 새로 뽑힌 분들에 대한 기대가 표현된 결과라고 생각된다. 그런데 지난 시장선거에서 후보들의 공약을 보면 임기가 겨우 1년 남짓한 시장에 나선 분들이라고는 전혀 여겨지지 않을 만큼 엄청난 사업들을 내놓았다. 그런 거창한 공약들이 다 실현된다면 물론 좋은 일이다. 하지만 솔직히 나는 그런 장밋빛 공약에 솔깃해지기보다는 공공자전거나마 마음 놓고 다시 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우리 주변의 작지만 소중한 일들, 행정기관과 공무원들이 꼭 챙기고 보살펴야 할 일들이 코로나19 사태를 핑계로 너무 쉽게 잊힌 채 지나고 있지는 않은가 걱정되어서 드리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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