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익의 참살이 인문학] 반려견 살림이의 마음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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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대 치의학전문대학원 의료인문학교실 교수

지금은 한 식구가 된 반려견 살림이를 입양한 것은 주말부부 생활이 10년을 넘어선 해의 어느 봄날이었다. 주말인데도 가족에게 가지 못하고 혼자 빈둥대던 나는 동네 펫숍을 서성이다가 충동적으로 이 아이를 데려오고 말았다. 뭇 생명은 서로 어우러지면서 푸르게 살아나고 있었지만, 혼자인 나의 삶은 한없이 움츠러들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을까. 나는 이 아이가 내 삶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라 여겨 ‘살림이’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태어난 지 한 달쯤 된 강아지는 너무 귀엽고 예뻤다. 먹을 것을 온 집안에 숨겨 두고 찾아 먹게도 하고 풀밭을 뛰어다니게도 하면서 나름 정성껏 키웠다.

문제는 내가 출근한 낮, 그리고 가족에게 간 주말 동안이었다. 어릴 적 온종일 개집에 묶여 살던 누렁이를 생각하며 위안을 삼기도 하고, 안 쓰는 스마트폰을 설치해 지켜보기도 했지만 내가 뭔가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는 없었다. 이즈음 살림이는 자기가 싼 똥을 먹거나 물고 다니는 등 문제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정보를 검색하면서 해결책을 찾아보았지만, 결론은 “당신은 개를 키우면 안 된다”라는 동물 행동 전문가의 진단이었다.


반려견 통해 깨달은 회피와 접근 본능
인간의 ‘빠른 마음’ ‘느린 마음’ 해당
고정된 이치로 세상 보는 관념 버려야


나를 살리려고 데려온 강아지였지만 이젠 거꾸로 내가 그놈을 살려야만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살림의 대상일 뿐 살림의 능동적 주체가 될 수 없었던 나는 결국 종일 함께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 아내에게 그놈을 맡길 수밖에 없었다. 이제 주말부부를 면하고 함께 살게 된 우리 가족은 모두 넷이다. 살림살이의 주인인 아내와 강아지 한 마리, 고양이 한 마리, 그리고 나 또는 사람 한 마리다.

개가 사람과 함께 살게 된 역사는 최소 1만 년에서 수만 년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사냥감을 두고 경쟁하는 관계였던 늑대와 사람이 서로의 반려종이 될 수 있었던 건, 서로가 생존과 안전에 도움이 된다는 걸 자연스레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개는 사냥의 위험과 수고로움 없이도 음식을 구할 수 있었고 사람은 든든한 파수꾼을 곁에 둘 수 있게 된 것이다. 늑대는 사람을, 사람은 늑대를 길들였고, 그 결과가 지금 사람과 개 사이의 관계다.

하지만 작은 위험 신호에도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야성을 완전히 잠재우기에 1만 년이란 시간은 그리 긴 것이 아니다. 배를 드러내고 아양을 떨다가도 옷을 입히거나 목욕을 시키려고 불편한 자세를 취하게 하면 영락없이 공격적인 자세로 으르렁거린다. 개들 중에는 진돗개처럼 공격성이 강한 품종도 있고 골든리트리버와 같이 순한 품종도 있다. 하지만 어떤 품종이나 개체라도 공격과 순응, 회피와 접근의 본능을 정도껏 나누어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상반되는 두 마음이 모두 반려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반려동물의 행동 조절이란 이 두 본능을 적절히 자극해 사람과 함께 사는 데 방해가 되지 않는 행동 패턴을 습관화하는 것이다. 과거의 훈련법은 주로 회피본능을 자극해 잘못된 행동을 했을 때 처벌을 가하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강아지가 좋아하는 자극을 활용해 접근본능을 충족시키면서 바람직한 행동 패턴을 학습시키는 긍정적 훈련법이 대세다. 사람에 대한 교육이 강압적 훈육에서 민주적 과정을 통해 욕망을 조절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는 것과 같은 흐름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심리학자 다니엘 카네만은 이 두 마음을 각각 빠른 마음과 느린 마음이라 불렀다. 빠른 마음은 즉각적인 위험 신호에 민감하고 느린 마음은 장기적으로 만족을 주는 신호에 더 잘 반응한다. 전자는 회피본능에, 후자는 접근본능에 최적화된 마음이다. 나는 살림이와의 동거와 생명의 역사에 관한 공부를 통해, 오랫동안 서로를 길들이며 진화해 온 반려인과 반려견 사이에도 빠르고 느린 마음들의 밀고 당기기 게임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걸 배운다. 그리고 그 게임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또한 나 자신 속에서도 진행 중이라는 걸 깨닫는다. 이 게임은 모든 생명에는 빠른 마음과 느린 마음이 기우뚱한 균형을 이룬 채 공존하고 있다는 사실로부터 성립한다.

진화생물학은 모든 생명이 이기적 경쟁 시스템이라는 전제 위에 세워진 학문이다. 느린 마음보다는 빠른 마음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개와 인간이 함께 진화해 온 역사, 그리고 나와 살림이의 반려 생활을 통해 배우는 건, 나를 지키는 빠른 마음도 함께 살려는 느린 마음의 도움 없이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잘못된 믿음은 건강한 마음살이를 방해한다. 생명과 세상이 정해진 이치에 따라 움직인다는 고정 관념을 버리고 세상과 함께 그리고 다른 생명과 함께 기꺼이 변하려 할 때 건강한 마음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아불류시불류(我不流時不流). 내가 흐르지 않으면 세상도 흐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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