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틈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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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1957~)

바위의 금 사이 그 틈새에 뿌리를 내린 들꽃들이

세상을 향해 긴 목을 내밀고 환한 미소를 짓습니다.

바위는 쉽게 깰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지만

세월이 바위 사이에 틈을 만들고

그 틈 사이에서 들꽃이 피어나게 했습니다.



바위가 자신의 몸에 틈을 만들어 꽃을 피우듯이

사람들도 생활이라는 바위에 틈을 내어

물을 뿌리고 햇빛을 쬐게 하여

향기 나는 꽃들을 피워 가며 달려가야

찰나를 지나 금새 다가오는 황혼을

아프게 맞이하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먼 여행을 떠나기 전

짧은 여행 참 재미있었노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집 (2004) 중에서-


꽉 짜인 일상 속에 잠시 담소를 나누는 휴식시간이 있어서 하루 일과가 완성되듯이 광물질인 바위틈에서 피어난 꽃 한 송이가 바위의 존재를 아름답게 완성시켜준다. 살아가는 모든 존재는 관계 속에서 완성된다. 부부관계, 친구관계, 부자관계를 아름답게 유지시켜 주는 것은 관계 속의 틈이다. 서로가 문제라고 느껴왔던 상대방의 이질감이야말로 관계를 유지시켜 주는 기본 틈인 것이다. 중심을 향해 달려가는 자아는 뇌의 확증편향성 때문에 자신의 행동과 사고의 양식을 합리화시킨다. 이런 서로 다른 자아의 영역에는 경계가 있다. 안테바신의 삶처럼 누구나 경계에서만 살아갈 수는 없지만 또 누구도 중심에서만 살아갈 수도 없다. 경계에 서서 차이 나는 중심을 바라보며 서로를 인정해 나가는 것이 경계의 미학이며 틈의 미학이다. 그래서 아름다운 사랑은 언제나 경계에 서 있는 것이다. 중심으로 달려가지 못하고. 이규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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