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출구 없는 비극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산의 절반에 약간 못 미치는 면적(360㎢)의 척박한 땅. 2007년부터 지금까지 14년에 걸친 유례 없는 봉쇄에 ‘지붕 없는 지상 최대 감옥’이 돼 버린 곳. 200만 명의 민초가 기약 없는 삶을 이어 가는 눈물의 터전. 비행기 소음, 폭탄, 최루탄이 일상이 된 ‘세계의 화약고’에서 또다시 비극이 타오르고 있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가 이스라엘 보복 공습으로 지난 10일(현지시간)부터 화염에 휩싸인 것이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분쟁은 기원전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뿌리 깊다. 굴곡진 지난한 역사 속에서 오늘날 팔레스타인 수난은 100여 년 전부터 시작됐다. 제1차 세계대전 발발로 승리가 절실했던 영국이 아랍인들에겐 1915년 ‘맥마흔 선언’으로 팔레스타인 아랍국 독립을, 유대인에겐 1917년 ‘벨푸어 선언’으로 팔레스타인에 유대인 건국을 약속하면서 비극의 서막이 올랐다. 이후 영국으로부터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관 받은 유엔은 팔레스타인 지역을 아랍인 구역과 유대인 구역으로 분할시키는 안을 채택했다. 유대인들은 이를 수락했지만, 아랍은 거부했다. 1948년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에 이스라엘 정부를 세운 이후 네 차례에 걸친 중동전쟁의 승리로 유대인들은 2000년간의 방랑을 끝냈지만, 팔레스타인은 2000년간 살던 고향을 잃고 말았다.

세계의 화약고에 평화가 찾아올 뻔도 했다. 라빈 이스라엘 총리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 의장이 1993년 오슬로 평화협정을 맺으면서 평화 공존을 모색한 것이다. 하지만 라빈 총리가 1995년 암살되고 아파라트 의장이 2004년 독살되면서 공존 가능성은 사라져버렸다.

최근 무력 충돌 현장으로 돌아와 보자. 열흘 가까이 이어지는 무력 충돌로 18일 현재 사망자가 200명을 훌쩍 넘어섰다. 숨진 대부분이 팔레스타인인이고, 세계 언론사들이 입주해 있던 건물을 비롯해 가자지구 내 병원, 학교 상당수가 무너졌다. 유엔을 비롯한 주요국들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국가 대 국가로 인정하는 ‘두 국가 해법’에 새삼 주목하고 있다. 하지만 동예루살렘 영유권 등 풀기 힘든 쟁점들로 인해 오슬로 평화협정 이후 20년이 넘는 지금까지 협상은 제자리걸음이다. 중재자마저 없는 상황에서 두 국가 해법은 공허한 메아리가 될 우려가 크다. 출구 없는 비극은, 멈출 기미가 없다. 죽어 가는 민간인을, 죄없는 아이들을 세계는 지켜만 볼 것인가. 윤여진 국제팀장 onlypen@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