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등잔 밑 성폭행’ 범죄에 속수무책 드러낸 전자발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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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 재범 방지를 위한 전자발찌 제도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오죽했으면 무용지물이라는 말까지 나올까 싶다. 실제로 지난 12일 부산 동래구 원룸에서 발생한 성폭행 사건은 법무부의 전자발찌 관리가 얼마나 허술한지 여지없이 보여 줬다. 성범죄 전력으로 전자발찌를 찬 남성이 성폭행을 저지르고 전자발찌를 훼손하는 동안 법무부는 사실상 아무런 대응을 못 한 것이다. 그런데도 법무부는 해당 남성에 대한 보호관찰에는 큰 문제가 없었다고 태연히 답했다 하니 답답하다 못해 참담한 지경이다. 남성을 체포한 것도 법무부의 조치에 따른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신고로 출동한 일선 경찰이 공조한 결과라니, 혀를 찰 노릇이다.

재범의 대부분 범인 거주지 인근서 발생
인력 확충하고 관리 매뉴얼 새로 갖춰야

지난 3일 법무부는 ‘전자감독 활용 영역 확대 방안’을 발표하면서 전자발찌 제도가 성범죄 재범 예방에 실효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성범죄자 조두순이 지난해 12월 출소 이후 한 차례만 외출했음을 예로 들었다. 하지만 이는 현실을 제대로 보지 못한 자화자찬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법무부가 국회에 제출한 ‘전자발찌 착용자 성폭력 재범 현황’에 따르면 최근 5년간 성범죄로 전자발찌를 부착한 범죄자의 재범 건수는 292건으로 결코 적지 않았다. 특히 재범의 절반 이상은 범인의 거주지 1km 이내에서 발생했다. 이번 동래구 사건도 범인의 집과 피해자의 집은 불과 100m 거리였다. 말 그대로 등잔 밑이 어두웠던 것이다.

전자발찌 제도는 성범죄자들에게 심리적 압박감을 줘 재범을 원천적으로 막는 것을 목적으로 2008년 9월 도입됐다. 하지만 전자발찌를 가위나 펜치로 쉽게 끊고 도망간다거나 전자발찌 착용자가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가도 경보음이 울리지 않는 등 기능과 운용 측면에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돼 왔다. 관리 인력도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국내 전자발찌 착용 대상자는 3000명이 넘지만 이를 관리하는 인원은 230여 명에 불과하다. 특히 전자발찌 착용자의 외출금지 시간(오후 10시~다음 날 오전 6시)의 당직자는 100명에 1명 꼴이라고 한다. 관리·감독에 이렇게 허점이 많으니 전자발찌가 무용지물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근래 성범죄가 빈번하게 일어나 시민들은 불안하다. 특히 이번 동래구에서의 성폭행 사건은 지난 1월 대연동 원룸촌에서의 사건과 판박이라 대학생 등 홀로 사는 여성들 사이에서 불안감이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 전자발찌 관리 시스템마저 큰 구멍이 뚫려 있으니 보통 문제가 아니다. 쉽게 훼손할 수 없도록 전자발찌의 내구성을 강화하든 보호관찰 인력을 대폭 확충하든 가능한 모든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다. 성범죄 재범이 가해자의 거주지 인근에서 주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관리·감독 매뉴얼을 새롭게 마련할 필요도 있다. 전자발찌를 찬 범죄자가 버젓이 거리를 활보한다는 건 상상만 해도 소름 끼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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