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위협받는 문 대통령의 '케렌시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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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창훈 서울정치팀장

문재인 대통령에게 ‘완벽한 하루’는 “양산 집에서 (반려견)마루를 산책 시키고, 텃밭에 물을 주고, 집 앞 개울에 발 담근 채 막걸리 한 잔 마시며 책을 읽을 수 있는 날”이다. 그런 그에게 얼마 전 양산의 ‘사저 반대’ 움직임은 적잖은 충격이었을 것이다. 정든 삶의 터전에서 ‘잊혀진 사람’으로 돌아가겠다는 문 대통령의 소박한 소망. 그마저 험난하게 다가올 때 비록 일부의 문제 제기라고 해도 ‘염량세태’(권력이 있을 때에는 좇고, 권력이 약해지면 푸대접하는 세태)가 이런 것인가’라고 씁쓸하게 되뇌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남은 임기 1년 동안 문 대통령에게 이런 불쾌한 경험은 더 잦아질 것이다. 부동산 폭등이 방아쇠를 당긴 임기 말 민심 이반 현상은 부산·서울시장 보궐선거 참패로, 곧 이은 ‘콘크리트 지지율’ 붕괴로 점점 뚜렷해지고 있다.

문 대통령 씁쓸했을 사저 반대 움직임
최근 뚜렷해진 민심 이반의 한 모습
퇴임 후 불행한 ‘전직’의 사슬 끊으려면
하산 길인 남은 1년 ‘통합’에 진력해야

검찰개혁의 ‘옥동자’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의 ‘1호 사건’을 둘러싼 논란은 공직 사회에 대한 통제력이 급속도로 이완되고 있다는 징후다. 장관 후보자 임명 강행 기류에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이례적으로 강하게 반기를 들고 나선 것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연말쯤엔 여당에서 문 대통령의 탈당 얘기가 나올지도 모른다. 직선제 도입 이후 6명의 전직 대통령 중에 5명이 재임 중 여당을 떠났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지금 (내가) 나간다고 떨어진 표가 다시 돌아오겠느냐”고 항변했지만 탈당을 피하지 못했다. 여당이 청와대 때문에 정권 재창출이 어렵다고 하면 대통령은 버틸 재간이 없다.

지난 14일 민주당 지도부를 만난 문 대통령이 정권 임기 말 당청 분열의 역사를 언급하며 ‘원팀’ 정신을 강조한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임기 끝까지 국정 장악력을 유지하고 싶은 현재 권력과 새로운 리더십으로 차별화를 꾀하려는 미래 권력과의 충돌은 필연적이다.

이전 정부와는 다른 ‘DNA’를 자부하는 현 청와대는 하산하는 길도 이전과는 다를 것이라고 한다. 노영민 전 비서실장은 지난해 청와대를 떠나면서 문 대통령이 2007년 3월 참여정부 마지막 비서실장으로 취임할 당시 “끝없이 위를 향해 오르다가 임기 마지막 날 마침내 멈춰선 정상이 우리가 가야 할 코스”라고 했던 말을 전했다. 과거 정부와 같은 임기 말 레임덕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같은 시기 문재인 비서실장과 함께 일했던 김병준 정책특보가 회고한 청와대 모습은 이랬다. “정권 초엔 대통령 지시 하나 더 받으려 하던 참모들이 말기가 되자 고개를 푹 숙이고 대통령 말을 받아 적기에만 바빴다”. 심지어 회의를 마친 노 대통령이 “오늘도 원맨쇼 했다”고 푸념할 지경이었다고 하니, 5년 권력의 무상함이 적나라하게 다가온다.

모든 정권이 피하려 했지만 피하지 못한 내리막길을, 우리는 오르막길로 바꿀 수 있다고 강변하는 것 또한 오만한 모습이다. 물론 남은 1년 코로나19 극복, 부동산 가격 안정 등 시급한 당면 과제가 문 대통령 앞에 놓여 있다. 그러나 권력의 하산길에 접어든 문 대통령에게 많은 이가 마지막으로 전력을 기울었으면 하는 부분이 있다면, 바로 ‘국민 통합’이 아닐까 싶다. ‘조국 사태’ 이후 이어지는 일련의 ‘정치적 전쟁’을 거치면서 우리 사회의 진영 갈등은 ‘공존 불가능’ 지경으로 악화됐다. 최근 인터넷 댓글에 ‘이게 다 문재인 때문’이라는 글이 횡행하고 있다. 참여정부 시절 모든 부정적인 일에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라는 유행어의 재판이다. 문 대통령으로선 기가 찰 노릇이겠지만, 이런 저주의 언어가 다시 회자되는 건 네 편의 잘못엔 가혹하고, 내 편의 허물엔 관대했던 문 대통령과 여권의 책임이 크다.

사실 이 지경에서 문 대통령이 어떤 말과 행동으로 이 간극을 좁힐 수 있을지 회의적이지만, 갈등의 치유는 진솔한 사과와 부단한 소통이 약이라는 원칙론으로 돌아가는 것도 방법이다. 일례로 부동산 폭등으로 ‘벼락 거지’가 된 사람들의 상실감을 대통령이 진솔한 언어로 위로하는 건 어떨까? 인사 논란에 대해서는 “짠하다”는 ‘내편의식’ 대신 “국민 눈높이에 부족했다”며 깔끔하게 사과한다면 야당은 공세의 호기로 삼더라도 국민은 문 대통령의 변화를 호평할 것이다. ‘문파’로부터 ‘문자 폭탄’을 맞은 의원들을 직접 만나 “앞으로도 당내 민주주의와 정책의 균형을 위해 다양한 목소리를 내달라”고 격려한다면 신선한 충격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전직 대통령이 퇴임 후 불행해지는 역사는 문 대통령 개인 뿐만 아니라 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도 반드시 끊어야 할 악습이다. 1년 뒤 문 대통령이 가장 자유로울 수 있는 케렌시아(영혼의 안식처)에서 잊혀진 사람으로 평화롭게 살아갈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jc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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