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영화 '자산어보'에서 바라보는 정치와 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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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길수 지역사회부 중부경남팀장

올해 국내 개봉한 인기 영화에는 ‘미나리’와 ‘자산어보’ 등이 있다. 미나리는 윤여정 씨가 한국 배우 최초로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받아 국내외에 큰 관심을 끌었다. 반면 자산어보는 조선 후기 대표적 지식인 자산 정약전(1758~1816)이 유배지 흑산도에서 어류백과 <자산어보>를 쓰면서 민초들과 어울린 과정을 풀어냈다. 현란한 색감이 판치는 대다수 영화와 달리 보기드문 흑백영화다.

어느 영화가 더 인기있느냐를 떠나,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를 앞둔 국내 상황을 감안하면 ‘자산어보’가 유권자들에게 시사하는 바 크다. 자산어보는 어류백과사전 그 자체보다는 조선 후기 시대상 등 역사를 바탕으로 ‘부당한 정치’를 고발하는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배우 설경구가 주인공 정약전 역으로, 그의 형제 다산 정약용 역에 류승룡이, 그리고 변요한이 흑산도 청년 장창대 역으로 나온다. 자산어보에서 자산은 흑산도의 다른 이름이고, 어보는 물고기 백과사전이라는 뜻이다. 정약전은 흑산도라고 하면 서신을 받아보는 가족들이 무섭게 여길까 싶어, 섬 이름을 자산으로 바꿨다. 관객들은 <자산어보>를 영화로 만든 만큼 각종 물고기와 해조류를 포함해 수중생물의 명칭, 크기, 형태, 맛, 어획 시기와 방법 등이 주류를 이룰 것으로 예견한다. 괜한 선입견이다. 이 영화는 신비로운 ‘물고기 책’의 흥미진진한 제작과정이나 숨겨진 비밀에 초점을 두지 않았다. 과거를 통해 관직까지 올랐던 엘리트 관료 정약전이 당시 어민들조차 미천하게 취급하던 어보를 집필하게 된 까닭은 조선 후기 집권세력의 정치적 탄압에서 출발한다. 영화는 당시 기득권에 의해 자행되던 불평등한 사회상을 고발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

약전·약용 형제가 조선의 근간인 성리학을 위협하는 서학(천주교)을 섬긴다는 이유로 전라도 해안에 유배 간 것 자체가 부당한 정치적 배경이다. 시대의 틀(당파싸움)을 깨지 못하는 답답함에서 영화는 출발한다. 영화는 정약전이 힘든 귀양살이 속에서도 실사구시의 실학정신을 바탕으로 자산어보 완성에 심혈을 쏟는 모습을 잘 그려 내고 있다. 현란한 컬러보다 잔잔한 흑백으로 사람 냄새와 넘실대는 바다, 갯벌을 느낄 수 있다. 볼수록 진한 흑백의 여운이 묻어나는 영화다. 특히 영화 속 인물 창대는 우여곡절 끝에 섬 생활을 청산하고 이상적 정치권력을 찾아 공직에 진출하지만, 결국 실패한다. 애초부터 정의는 없었고 정해진 신분과 사회적 부조리의 벽을 넘을 수 없는 구조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컬러보다는 흑백이 더 감동을 더하는지도 모른다. 200년이 지난 지금, 대한민국 정치와 행정은 어떠한가?

내년 지방선거를 1년여 앞두고 여야 모두 선거에서 유불리를 겨냥한 자화자찬이나 상대방에 대한 비난 일색이다. 이른바 ‘내로남불’이 주류다. 새로운 정책이나 대안보다는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프레임이 자리하고 있다. 내 진영은 옳고, 상대 진영은 틀렸다는 공식에 빠지다 보니 새롭고, 합리적인 것은 처음부터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영화에서처럼 상대방 죽이기에 열중하는 정치는 비전이 없다. 실행파일 없이 이상적 구호만 외치는 행정도 미래가 없다. 이 영화에는 유권자들이 후보자를 선택하는 판단기준이 담겨 있다. kks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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