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뉴노멀 시대, 가족정책의 발상 전환이 필요하다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김영미 동서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가족을 둘러싼 변화의 바람이 거세다. 표준이자 정상 가족으로 여겼던 부부와 미혼자녀 가구 비중이 2019년 기준, 29.8%에 불과하다. 대신 1인 가구는 30.2%, 2인 가구는 27.8%로, 전체 가구의 58%가 됐다. 20년 전과 비교해 1인 가구는 15.5%에서 두 배가 됐고, 4인 가구는 31.1%에서 16.2%로 반토막이 됐다. 표준으로 여겼던 것이 표준이 아닌 시대가 됐다.

가족에 대한 인식에는 변화의 바람이 더 거세다. 2020년 가족 다양성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결과를 보면, 국민의 69.7%가 혼인·혈연 관계가 아니어도 생계와 주거를 함께한다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나아가 국민의 39.9%는 함께 살지도, 생계를 함께하지 않아도 정서적 유대감을 가진 친밀한 관계라면 가족이 될 수 있다고 답했다.

1인 가구 증가, 혼인·출산율 하락
가족을 둘러싼 변화의 바람 거세
국민인식이 법·제도의 틀 넘어서

형태보다 생활·관계에 초점 맞춰
익숙한 차별적 용어부터 바꾸고
비혈연 공동체 지원도 고민해야


1인 가구 증가, 혼인율 하락, 출산율 하락, 이혼율 증가와 같이 통계수치만 본다면, 이 모든 현상은 가족해체의 징후, 막아야 할 사회문제로 여겨진다. 현재 정부의 가족법과 정책은 이런 인식에 토대하고 있다. 2004년 제정된 건강가정기본법이 대표적이다. 제정 당시부터 건강한 가족과 건강하지 않은 가족으로 구분해 차별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혼인과 출산에 대한 개인의 선택을 존중, 지원하기보다 사회적 중요성을 인식해야 한다는 국가주의 사고를 강요한다고 비판받았다. 법명을 가족정책기본법으로 변경하고 전면 개정해야 한다는 지속적 요구가 있었다. 올 4월,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이 발표됐고, 건강가정 용어 개정, 혼외자 등 차별적 용어 개선 검토 등의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이것이 가족 가치를 훼손하고 가족해체를 조장한다는 반대 움직임이 거세다.

현재 가족의 변화는 국민이 가족 가치를 경시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다. 급변하는 시대, 그 어느 때보다 우리 국민은 가족 가치란 무엇인지, 누가 나의 가족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그것이 과거에 표준, 정상(노멀)이라고 여겼던 것과 다를 뿐이다. 다수 국민은 핏줄을 넘어서 친밀감과 정서적 교감을 나누고 서로 존중하고 돌보는 사람(동물, 인공지능까지도)을 가족으로 여긴다. 불평등한 가족‘제도’에 들어가는 것은 원치 않지만, 친밀한 가족‘관계’는 절실히 원한다. 가족 다양성 조사에서, 우리 국민의 67%가 결혼하지 않고 동거하는 것에, 48.3%가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는 것에 찬성했다. 사유리 씨의 비혼 출산에 대한 뜨거운 호응은 느닷없는 반응이 아니다. 가족 제도의 경직성, 사회적 낙인 때문에 표출하지 못했을 뿐이다.

가족의 변화를 좋았던 과거(과연 누구에게 좋았나?)로 되돌려야 할 것으로 보고, 변화하는 국민의 인식을 계도하고 바로잡아야 할 것으로 보는 관점에서 수립되는 정책은 반드시 실패할 것이다. 이미 국민 인식이 법과 제도가 한계지은 틀을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제 가족정책은 국민의 변화된 인식을 담아내는 그릇이 돼야 한다. 발상의 전환이 시급하다.

뉴노멀 시대, 정상 가족은 없다, 그냥 가족이 있을 뿐이라는 인식이 가족정책의 기본이념이 돼야 한다. 조손가족, 한부모가족, 다문화가족, 입양가족, 장애인가족 등 이름 붙이기는, 원래의 취지인 더 많은 지원이나 사회통합보다 차별의 근거가 되어 버렸다. 가족 형태가 아니라 가족생활과 가족관계에 초점 맞춘 보편적 가족정책을 강화해야 한다. 막아야 할 것은 가족해체가 아니라, 가족을 구분해 차별하고 소외시키는 것이다. 익숙한 차별적 용어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건강가정 지원은 가족 지원으로, 부모교육은 양육자 교육으로, 예비부부 교실은 동반자 교실 등으로 바꿔야 한다.

혈연, 혼인에 한정된 가족 개념을 친밀한 관계 중심으로 유연하게 바꿀 필요가 있다. 유럽 국가들은 가족을 형성하는 것이 큰 경제적, 심리적 부담이 되지 않도록 느슨하고 유연한 가족 구성 방식을 도입했다. 동거, 사실혼 등을 법적, 제도적으로 인정하고 부모의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아동을 지원하고 있다. 2014년 국회에서 생활동반자법 도입이 시도됐지만, 무산됐다. 결혼장려, 출산장려를 위한 가족정책이 아니라, 국민의 외롭지 않고 행복할 권리, 친밀한 관계를 안정적으로 보장받을 권리를 지원하는 가족정책의 확장이 필요하다.

지방정부는 1인 가구 대책을 포함해 혈연, 혼인 관계에 한정되지 않는 가족 지원, 비혈연 공동체 지원책을 적극적으로 고민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미 변화는 시도되고 있다. 복지법인 우리마을이 부산 개금 지역에서 시작한 고령자 대안가족사업이 대표적이다. 전통적 가족 개념이 해체된 자리를 다양성이 존중되는 열린 가족, 개인적 자율성과 정서적 유대감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가족으로 채우는 노력은, 어쩌면 진정한 가족의 가치를 회복하는 길일지도 모른다.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