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비틀' 코인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2013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쉴러 미국 예일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표적인 가상화폐 비트코인이 전형적인 ‘내러티브 경제학’에 부합한다고 말한다. 합리성과 이성이 지배할 것 같은 경제가 사실은 내러티브, 즉 서사로 인해 움직이고 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더 쉽게 말하자면, 마치 전염병처럼 빠르게 퍼진 입소문이 비트코인의 가격을 천정부지로 치솟게 하거나 푹 꺼지게 할 수 있다는 거다. 2000년 ‘닷컴 버블’의 종말과 2006년 부동산 폭락을 예견한 쉴러 교수는 인간의 감정이 재무적 의사결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연구로 유명하다.

미국 전기차 회사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비트코인 서사에 불을 붙였다. 올 2월 머스크는 “비트코인을 결제수단으로 사용하겠다”고 깜짝 발표를 했고, 이후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 가격은 폭등했다. 하지만 머스크는 3개월 만인 지난 12일 갑자기 테슬라 대금 결제 중단을 선언했다. 시장은 폭락했고, 전 세계 가상화폐 시가총액 약 415조 원이 증발했다. 머스크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난 16일 테슬라가 보유 중인 비트코인을 모두 처분할 수도 있음을 시사했다. 그가 남긴 여섯 글자 한 단어 “Indeed(정말이야)” 트윗은 가상화폐 시장을 파랗게 질리게 했다.

한 기업인의 경거망동은 비난받아 마땅하겠지만, 그의 말 한마디에 가상화폐 시장이 대혼란에 빠진다는 것 자체가 난센스다. 변동성 심한 가상화폐 시장의 민낯을 그대로 보여 준 셈이라고 할까. 물론, 머스크의 입방정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골드만삭스, 모건스탠리 같은 미국 대형 투자은행이 가상화폐 시장 참여를 선언하고, 미국 최대 가상화폐 거래소 코인베이스가 나스닥에 입성하는 걸 지켜본 사람들은 호재로 여겼다. 무엇보다 주변에서 들려오기 시작한 ‘수상한’ 성공담에 들썩였다. 결과적으로 ‘벼락 거지’ 신세라도 면할까 싶어서 불나방처럼 뛰어든 ‘내돈내산(내 돈 주고 내가 산)’ 코인 투자자들만 억울하게 됐다. 그렇지만 어쩌겠는가. 다 욕심 때문인걸. 문자 그대로 일확천금의 헛꿈을 꾼 쓰디쓴 대가인 것을.

쉴러 교수가 지적한 비트코인의 내러티브 서사를 다시 생각한다. 그의 말대로라면 지금의 상황은 매우 심각할 수 있다. 긍정적인 서사가 끝나고 관심이 사라질 경우 언제든 대폭락의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이, 나아가 수많은 가상화폐가 그 서사의 과정에 든 건 아닌지 주목할 때다.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