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전증은 불치병?… 약물치료·수술로 정상생활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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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전증은 불치병이 아니며 환자 대부분이 약물치료만으로 정상생활이 가능하다. 부산대병원 신경과 이가현 교수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부산대병원 제공

소크라테스, 나폴레옹, 도스토예프스키의 공통점은? ‘뇌전증(腦電症)’이다. 이들은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위인들이지만, 모두 뇌전증을 앓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보통 수천억 개의 뇌신경 세포 중 일부에서 동시에 과도한 전류가 발생해 나타나는 이상 현상을 발작이라고 하는데, 발작이 특별한 유발요인 없이 두 번 이상 반복해서 생기는 질병을 뇌전증이라 한다. 한때 ‘간질’이라 불렸던 이 질병은, 그 명칭(지랄병)이 담고 있는 사회적 편견 때문에 뇌에 비정상적인 전기파가 온다는 뜻의 뇌전증으로 2010년 공식 명칭을 바꿨다. 뇌전증의 그리스 어원 ‘Epilepsy’ 또한 악령에 의해 영혼이 사로잡힌다는 뜻이다.

과학 발전에 힘입어 뇌전증은 뇌질환임이 밝혀졌으며, 대부분의 경우 조절 가능하고 일부 완치도 기대할 수 있게 됐다. 결코 정신병이나 불치병이 아니며 뇌전증 환자도 얼마든지 지적이고 생산적인 삶을 살 수 있다.


국내에선 매년 2만~3만 명 발병
두 번 이상 발작 때 치료 시작
항경련제 쓰면 2년 이상 복용
약물로도 경련 멈추지 않는
난치성 환자, 수술적치료 병행


■주로 소아기, 노년기에 발생

국내에선 매년 2만~3만 명의 새로운 환자가 생길 만큼 뇌전증은 생각보다 흔한 병이다. 주로 소아기와 노년기에 많이 발생한다. 소아기에는 분만 때 뇌 손상, 선천성 기형, 중추신경계 감염이 주된 원인이고, 성인에겐 외상에 의한 두부 손상, 뇌혈관질환이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특별한 발병 원인을 모르는 경우가 더 많다.

익히 알려져 있는 발작 초기부터 정신을 잃고 온몸을 떨며 호흡곤란, 청색증이 나타나는 증상은 대발작이다. 대발작 외에 다양한 형태의 부분발작이 있다. 부분발작은 의식소실 없이 손이나 팔을 까딱까딱하거나 입꼬리가 당기는 형태의 운동 증상, 한쪽 얼굴·팔·다리 등에 이상감각 증상, 속에서 무언가 치밀어 올라오거나 가슴이 두근거리고 땀이 나는 자율신경계 증상, 이전의 기억이 떠오르거나 물건·장소가 친숙하게 느껴지는 정신 증상으로 나타난다. 의식 저하가 동반돼 하던 행동을 멈추고 초점 없는 눈으로 한 곳을 멍하게 쳐다보는 증상은 복합부분발작이다.

처음 발작이 발생했을 경우 의사는 병력청취와 신체진찰을 통해 뇌전증 발작인지, 아니면 다른 형태의 발작인지를 구별한다. 뇌전증 진단에서 가장 중요한 검사는 뇌파 검사이나, 뇌파 검사상 정상으로 나와도 뇌전증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다.

부산대병원 신경과 이가현 교수는 “30~40%의 뇌전증 환자에게선 첫 뇌파 검사에서 정상인 경우가 많다. 증상이 없는 사람 중에서도 1~2%는 뇌전증파가 나오는 경우가 있으므로 절대적인 검사가 아니다”며 “전문의의 임상적인 판단과 반복적인 뇌파 검사가 중요하고, 추가적으로 뇌 구조적 이상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뇌 MRI(자기공명영상)도 시행한다”고 말했다.



■부작용 적고 효과 좋은 약물치료

두 번 이상의 발작이 나타날 때 약물치료를 시작한다. 발작이 한 번만 있고 검사상 이상이 없다면 약물치료를 하지 않고 경과를 관찰한다. 첫 발작이라도 뇌파에서 뚜렷한 뇌전증파가 관찰되거나, 뇌 MRI상 구조적 이상, 신경학적 검사상 이상, 30분 이상 발작 지속 또는 중간에 의식 회복 없이 잇따라 발작이 나타날 경우엔 약물치료를 시작한다.

이가현 교수는 “최근엔 부작용이 적고 효과적인 항경련제가 많이 개발돼 있다. 그러나 특별히 가장 효과가 좋은 항경련제는 없으며, 복용하기 시작하면 최소 2년 이상 먹어야 하므로 부작용과 환자의 나이, 기저질환 등을 고려해 환자에게 가장 적절한 약물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고 강조했다.

뇌전증 환자의 70% 정도는 항경련제를 복용해 경련을 멈추게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머지 30%는 두 가지 이상의 항경련제를 복용하더라도 경련이 지속돼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수 있는데, 이러한 경우를 난치성 뇌전증으로 분류한다. 난치성 뇌전증 환자는 항경련제 복용 외 수술적 치료를 하기도 한다.



■유발 병소 절제하는 수술도

뇌전증 수술은 뇌전증 유발 병소를 찾아내 절제하는 것이 기본이다. 이를 위해 유발 병소와 병소 주변의 뇌기능을 확인하는 비디오뇌파검사 같은 추가 검사가 필수적이다. 절제 수술 외에 신경조직의 자극을 통한 신경변조 치료(neuromodulation)인 미주신경자극술도 사용된다. 미주신경자극술은 10번 뇌신경인 미주신경을 자극해 발작을 억제하는 수술로, 비교적 간단해 절제 수술이 불가능한 경우 대신 고려된다.

이가현 교수는 “뇌전증은 항경련제를 복용하거나 수술을 통해 발작을 일으키는 병소를 제거하면 증상 완화와 치료가 가능하다. 대부분 환자들이 경련 없는 정상생활이 가능하며, 일부에선 완치도 기대할 수 있다”면서 “이런 사실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선입견으로 보는 시각이 있고, 뇌전증 환자도 사회적으로 위축된 경우가 많다. 편견 없이 뇌전증 환자와 더불어 살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것이 뇌전증을 전공하는 의사로서 바람이다”고 전했다.

정광용 기자 kyjeo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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