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서 그린 이중섭 ‘황소’, 통영으로 귀향하게 해 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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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이 통영에 머물며 남긴 걸작 중 하나인 황소. 화면 전체에 생명력이 넘친다. 통영시 제공

붉은 화면 속에서 검은 눈망울을 번득거리며 입을 벌린 ‘황소’. 화면 전체에 생명력이 넘친다. 이와 반대로 눈동자 없는 머리를 축 늘어뜨린 채 간신히 발걸음을 내딛는 ‘흰소’. 사후 불세출의 ‘천재 화가’이자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국민 화가’가 된 이중섭(1916~1956)이 60여 년 전 삶의 나락에서 몸부림치며 그린 걸작이다. 당시 이중섭은 그림만 열심히 그려 팔면 일본에 있는 가족을 만날 것이라는 ‘희망’에 가득 차 있던 시기에 이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황소와 흰소에 또 다른 공통분모가 있으니, 바로 예향 ‘경남 통영’이다.

함경남도 평원에서 부농의 아들로 태어난 이중섭은 일제강점기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광복 후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귀국했다. 당시 고향 가까운 원산에 정착해 중학교 미술 교사로 평범하게 살았는데,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4 후퇴 땐 가족과 함께 미 해군 수송함에 얹혀 제주도로 피란했다. 이후 경남도립 ‘나전칠기 기술원 양성소’ 교육 책임자로 있던 염색공예가 유강렬의 권유로 1952년부터 1954년까지 약 2년간 통영에 머물며 미술 활동 전성기를 맞았다. 이중섭 하면 떠오르는 대표작 대부분을 통영에서 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소, 흰소를 비롯해 ‘노을 앞에서 울부짖는 소’, ‘달과 까마귀’, ‘부부’, ‘가족’ 그리고 ‘세병관 풍경’, ‘남망산 오르는 길이 보이는 풍경’ 등 통영 곳곳의 아름다운 풍광을 담아낸 풍경화까지, 무려 40여 점을 통영에서 완성했다. 당시 이중섭은 이를 모아 항남동 성림다방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2016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이중섭, 백년의 신화’전에 ‘통영관’이 따로 설치됐을 정도다.

피란 때 각별한 인연 맺은 예향
대표작 40여 점 통영 시절 완성
故 이건희 컬렉션 중 관련 작품
시, 공식 기증 요청·전시 추진

이뿐만이 아니다. 이중섭은 나전칠기 기술원 양성소에서 기거하며 학생들에게 데생을 가르치기도 했다. 이처럼 각별한 인연을 계기로 작품 활동의 주 무대였던 중앙동 일대를 ‘이중섭 거리’로 조성하고 그의 작품을 담은 화보판·아트타일을 설치해 통영에서의 삶을 되짚어 온 통영시가 이번에 그가 남긴 원화 확보에 팔을 걷어붙였다.

통영시는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소장 기증미술품(일명 이건희 컬렉션) 1488점 중 ‘황소’를 포함한 이중섭의 대표작 104점(회화 19점, 엽서화 43점, 은지화 27점 포함)이 국립현대미술관으로 기증된 것을 확인하고 문화체육관광부와 미술관 측에 통영 관련 작품 기증을 공식 요청했다고 16일 밝혔다.

통영시는 이를 토대로 통영시립박물관에서 특별전을 열고 향후 경남도립 나전칠기 기술원 양성소를 리모델링해 이중섭의 작품과 함께 통영 시절 발자취를 기념하는 공간으로 재탄생시킨다는 계획이다. 김민진 기자 mjk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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