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 발·초대형 기와… 빗장 열리는 ‘배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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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여름이었다. 부산박물관이 주도한 부산 배산성 1차 발굴조사에서 배산성 내 1호 원형 집수지(물 저장 시설)에서 길이 240cm, 너비 70cm(보존 처리 후 기준)의 대나무 발과 나무 기둥이 나왔다. 이 중 발굴 당시 훼손돼 대나무 살 수천 개로 작게 부서져 있었던 대나무 발은 지금껏 국내에서 출토된 적이 없는 희귀한 유물이었다. 출토 당시 유물은 썩지는 않았지만, 물을 머금은 상태로 일부가 훼손돼 있었다. 부산박물관은 한국전통문화대학교 목제문화재연구소에 이 유물의 수리를 맡겼다. 수리·복원비만 1억 원 가까이 들었고, 수리·복원하는데 2년 6개월이 걸렸다.

부산박물관, 배산성 발굴조사 성과전
대나무 발, 2년 6개월 복원 후 첫 공개
‘나무 기둥’ ‘을해년 명 목간’ 등 눈길

이들 유물이 복원 후 처음으로 부산시민에게 공개됐다. 부산박물관이 지난달 30일 개막해 6월 30일까지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여는 ‘2021년 발굴조사 성과전-배산성, 감춰진 역사의 비밀을 열다’에서다.

이번 전시는 2016년부터 2020년까지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된 배산성 발굴조사의 연구 성과와 출토 유물을 최초로 전시하는 자리로, 고대 동남해안에서 내륙으로 진입하는 첫 관문인 군사적 요충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배산성의 역사적 실체를 시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기획됐다.

부산박물관 발굴 전에는 배산성을 산 정상부를 둘러싼 두 겹의 토성으로 축조된 삼국시대 성 또는 가야의 토성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발굴조사를 통해 드러난 배산성은 전형적인 신라식 석축산성으로 확인됐다. 특히 2017년 배산성 북쪽에서 발굴된 지름 16~18m, 깊이 4~5m의 2기 집수지는 신라에서 축조한 원형 집수지 중 국내 최대급이다.

이번 전시에는 대나무 발·나무 기둥과 함께 30여 점의 출토 유물이 시민의 발길을 기다린다. 특히 유리관에 단독으로 전시된 ‘을해년 명 목간’은 관람객들이 알기 쉽게 목간에 새겨진 글을 확대한 문구와 함께 나란히 전시장 한가운데 전시돼 있다. 목간 크기는 33cm로 2017년 발굴 당시 2호 집수지에서 발굴됐다. 목간에 새겨진 을해년의 연대는 615년(진평왕 37년) 또는 675년(문무왕 15년)으로 추정됨에 따라, 전문가들은 목간이 신라시대에 제작됐을 것으로 보고 있다. 목간에는 대판사촌이라는 촌락과 배산성 사이에서 곡물이 오간 내역이 정리돼 있다.

또 하나 눈길은 끄는 전시 유물은 이번에 시민들에게 처음 선보이는 길이 50cm가량의 초대형 기와다. 이 정도 크기는 남한산성과 경주 화천리 기와가마 유적에서만 출토됐을 정도로 희귀하다. 하지만, 더 큰 반전이 있다. 이렇게 초대형 기와지만, 무게가 남한산성에서 출토된 기와(20kg)의 5분의 1 정도(4kg)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부산박물관 박정욱 학예연구사는 “대나무 발은 나무 기둥에 매달아 설치했을 것으로 추정되며, 높은 산에 건물을 짓다 보니 기와는 운반하기 쉽도록 무게를 최소화해 제작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배산성 축조에 사용된 쇠도끼, 괭이, 대팻날, 쇠못, 고리걸쇠 등과 성에 살았던 사람들이 실제로 쓰던 그릇, 어업용 도구 등 다채로운 유물도 함께 전시돼 있다. 배산성 발굴조사 연혁과 조사 성과, 배산성 성벽 축조 방법 등도 사진과 곁들여 설명돼 있다. 전시장 한쪽에는 배산성 발굴조사 영상도 보여준다.

송의정 부산박물관장은 “이번 전시는 7세기 신라가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한 그 역사의 한 장면을 잘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또 “수리·복원된 대나무 발 상태가 양호한 상태가 아니기에, 전시 후 다시 수장고에 들어가야 한다”면서 “이번 전시가 대나무 발을 자세히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부산박물관 ‘2021년 발굴조사 성과전-배산성, 감춰진 역사의 비밀을 열다’=6월 30일까지 부산박물관 기획전시실. 무료(인터넷 예약제). 051-610-7111.

글·사진=정달식 선임기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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