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필남의 영화세상] 조금 늦게 도착한 배우, 해럴드 로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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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과장된 동작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는 슬랩스틱 코미디로 맹활약한 무성영화 시대 스타라고 하면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을 떠올릴 것이다. 그들보다 덜 알려졌지만 꼭 기억해야 하는 무성영화 배우가 있다. 트레이드 마크인 동그란 안경과 모자를 눌러쓴 그는 어딘지 어리숙해 보이지만 절대 호락호락 당하지 않는 도시 청년의 모습을 주로 연기한 ‘해럴드 로이드’이다.

현재 ‘위대한 희극인을 환대하라, 해럴드 로이드 50주기 특별전’(5/1~5/16)이 영화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다. 부산에서 처음으로 상영하는 로이드 특별전이다. 그런데 무성영화를 대표하며 200편에 달하는 영화에 출연한 배우임에도 지금까지 그의 영화를 보기 힘들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영화의전당 부산 첫 로이드 특별전
채플린·키튼과 무성영화 시대 스타

배우·제작자로 영화 200편 출연
직접 스턴트 ‘스릴 시퀀스’로 유명

대표작 ‘마침내 안전’ ‘스피디’ 등
1920년대 시대 변화 감각적 묘사


해럴드 로이드는 저작권의 개념을 잘 알고 있는 배우로 다른 영화인들과 달리 자신의 작품을 직접 관리했다고 전해진다. 1938년 은퇴한 후에는 원본 필름들을 자신의 집에서 보관했기에 미국에서도 로이드의 영화를 보는 일이 어려웠다고 한다. 하물며 한국에서 그의 영화를 접하는 건 더욱 힘들었을 거다. 하지만 지금은 판권이 흩어져 있지 않은 데다, 필름 관리도 잘해서 좋은 화질로 관객들과 만날 수 있다.

또한 찰리 채플린이나 버스터 키튼이 연출과 연기를 동시에 했다면 로이드는 배우로 활동하면서 자신의 영화를 프로듀싱하는데 관심이 있었다. 그는 각 분야의 전문인들을 고용해서 자신의 영화를 제작했는데, 자신이 잘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나 영화의 예술성에 초점을 맞추는 영화평론가들은 채플린과 키튼을 작가로 인정하며 작품세계를 높이 샀다면, 로이드는 평범한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로 생각했다. 그로 인해 로이드에 대한 평가는 인색했으며 우리에게 조금 늦게 알려진 것이 아닌가 싶다.

로이드의 대표작은 ‘마침내 안전’이다. 돈을 벌기 위해서 사랑하는 연인과 이별을 하고 도시에 와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는 이 영화는 아기자기한 웃음과 기발한 연출을 한 번에 볼 수 있다. 특히 양복을 입고 높은 건물의 시계에 매달려 있는 로이드의 모습은 지금까지도 명장면으로 기억된다. 로이드는 높은 건물의 벽을 기어오르거나 자동차 뒤편에 매달려 있는 위험천만해 보이고 긴장감 넘치는 스턴트를 주로 선보였는데 이를 일컬어 ‘스릴 시퀀스’라고 명명했다. 대단한 것은 1919년 단편영화를 찍다가 촬영 중 폭발사고로 오른손 손가락 2개를 잃는 사고를 당했음에도 분장용 인공 손을 착용하고도 아슬아슬한 스턴트 장면을 이어갔다는 사실이다.

‘마침내 안전’에서는 1920년대 도시의 풍경들이 눈을 사로잡는다. 아침마다 벌어지는 출근 전쟁, 백화점이라는 거대한 공간은 당시 미국의 복잡한 모습을 잘 포착하고 있다. 영화 ‘스피디’에서도 미국의 혼란함을 표현하고 있어 주목할 만하다. 아직 마차가 다니는 뉴욕 도시의 모습과 도로를 개발하고 전철을 놓으려는 개발·투기 세력의 충돌을 그리는 이 영화는 경쾌한 분위기 속에서 뉴욕의 변화를 감지한다.

로이드는 뉴욕 맨해튼의 코니아일랜드 유원지에서 연인과 데이트를 통해 환상적인 뉴욕을 만들기도 하고, 뉴욕의 번잡스럽고 빠르게 달려가는 도시의 속도를 느끼게 만든다. ‘마차-자동차-전차’를 통해 점점 더 빠르고 강력한 것을 원하는 시대를 그리고 있다. 해럴드 로이드의 영화는 사회적인 메시지를 전달하는 힘은 약할 수 있지만, 시대의 변화를 인식하고 이를 감각적으로 그린다. 적재적소에 웃음을 유발하는 요소들로 잔재미를 주고 관객들을 즐겁게 만들 줄 아는 배우인 것이다. 바로 해럴드 로이드만 줄 수 있는 웃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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