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시선] 대통령 사저 논란이 남긴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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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 목소리 실체 아리송… 애당초 논란은 없었다?

지난달 27일 이후 공사가 중단된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문재인 대통령 사저 공사터(왼쪽 사진)와 사저 공사 찬반 논란이 된 펼침막들. 김은영 논설위원·김태권 기자 key66@

최근 전국적으로 시선을 끈 대통령 사저 논란 진위를 알아보기 위해 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평산마을 일대를 두 차례 다녀왔다. 처음 취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대통령의 진짜 이웃이 될 평산마을 주민의 참뜻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 같아서 거기에 집중해야겠다 싶었다. 그런데 추가 취재를 하면 할수록 “논란보다는 오해·섭섭함이 얽힌 결과는 아닐까” 싶었다.

관심은 자연스럽게 ‘누가, 왜 사저 건립을 반대하는 것인가’로 옮겨 갔다. 여러 사람을 만나 속사정을 들었다. 하지만 전국 각지의 매스컴에서 몰려와 조용하던 마을을 들쑤셔 놓은 터라 사저가 들어설 평산마을과 인근 서리마을, 지산마을 사람들은 선뜻 말하기를 꺼렸다. “정작 우리가 괜찮다는데 누가 반대해요”라고 말하면서도 행여 이웃 마을 사람끼리 갈등으로 비칠까 염려했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게 주민에게 말을 걸었고, 기자 인터뷰라면 손사래부터 치는 이장 몇몇을 계속 설득하면서 대화를 요청하는 한편, 양산시청·양산시의회·하북면 행복복지센터·주민자치센터 등 관계 기관을 직접 찾아다녔다. 또한 사저 건립 반대 펼침막(플래카드) 43개를 내걸었던 비상대책위원회(이하 비대위)와 거기에 속한 사회단체 대표도 ‘007 작전’하듯 어렵사리 접촉했다.

양산 하북면 평산마을 등
최근 두 차례 밀착 취재
누구도 선뜻 응하지 않아

당사자 평산마을 주민
대다수는 환영 분위기
“대통령도 거주 자유 있어”

의견 대립 비대위도
활동 중단 선언 ‘반전’

양산시장·경호처·비대위
간담회 통해 의견 개진
주민과 수시 소통 약속

향후 논란 재발 막으려면
양산시·청와대 경호처 등
주민 불편·불만 헤아려야

■사저 논란, 진짜 문제는

이해당사자라고 할 수 있는 평산마을 주민 대부분은 대통령 사저 건립에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대통령이 오시면 우리 마을이 지금보다 좋아지지 않을까요?” “우리 마을은 예나 지금이나 외지인이 이사 와도 크게 박대하지 않고 품어 주는 마을입니다. 대통령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대통령에게도 거주이전의자유가 있는데, 개인의 기본권을 제한하는 건 마녀사냥입니다.” “대통령도 사람인데 어디서든 살아야 하잖아요. 이번 일 때문에 마음 상하셔서 다른 곳으로 가신다고 할까 봐 걱정돼요.”

뜻밖의 사실도 확인했다. 비대위로 모인 하북면 17개 사회단체 대표 중 한 사람은 “경호처에서 평산마을 하고만 ‘소통’하는 모습이 서운했던 건 사실이지만 대통령 사저 건립 자체를 반대하려고 했던 건 아니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이는 “조용한 마을에 대통령 사저가 건립됨으로써 발생할 수 있는 제반 문제점에 대해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면서 대책을 마련하자는 취지라고 해서 동참했는데, 너무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아서 비대위에서 빠지려던 참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이들은 자신의 이름이 신문에 나가면 절대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심지어 “여론을 제대로 살펴서 써 달라”고 당부했다. 한결같이 익명을 요구하면서도 적극적으로 취재에 응한 그 마음을 헤아려야 되겠다 싶었다.



■ 비대위 활동 잠정 중단?

현장 취재를 거의 마무리하고 원고를 마감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극적인 반전이 일어났다. 한동안 평행선을 긋고 의견 대립을 보이던 비대위의 활동 중단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긴가민가 싶어서 양산시와 시의회, 하북면, 비대위 쪽을 각각 접촉했다. 약간의 입장차는 있었지만, 비대위 활동을 중단한다는 게 맞았다. ‘사저 건립 원천 무효’를 주장하는 펼침막이 등장한 지 20여 일 만이다. 물론 비대위 주축 멤버 가운데 일부는 지금도 “사저 건립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다.

하지만 반대 명분이 약해 보인다는 게 전반적인 평가다. 지난 11일 오후 4시 하북면 행정복지센터 2층에서 만난 김일권 양산시장과 대통령 경호처, 하북면(비대위·사회단체) 관계자 등 30여 명은 모처럼 머리를 맞대고 그간의 불편한 심기와 사저 공사와 관련한 궁금한 내용, 주민 건의 사항 등을 주고받았다. 이에 김 시장과 경호처 관계자도 평산마을을 제외한 다른 마을 주민들 불편사항까지 충분히 헤아리지 못한 점을 사과했다. 김 시장은 또 좁은 사저 진입도로 확장과 지산마을 인도 추가 설치 계획은 진작부터 서 있었다고 밝혔고, 향후 방문객 변화 추이를 확인해 주차장 조성 여부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수시로 주민들과 소통하겠다는 약속을 했다. 이제 양쪽 모두 약속을 지키는 일만 남았다.



■사저 건립 반대는 누가

여기서도 의문은 남는다. 비대위에서는 왜 사저 건립 반대 의견을 낸 것일까. 처음엔 서운함이 컸던 것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서 그 본질은 잊힌 듯했다. 각 사회단체 이름으로 내건 펼침막만 하더라도 회원 총의를 모았다기보다는 단체 대표가 비대위에 위임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정작 중요한 마을 주민들의 의사는 수렴되지 못했고, 사회적 여론까지 우호적이지 않다는 걸 깨달으면서 비대위 동력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더 결정적으로는 일대 마을의 토지를 소유하면서 여론의 한 축을 유지하던 통도사마저도 사저 건립을 반대하지 않겠다고 의견을 표명하자 반대할 명분은 더욱 없어졌다.

하지만 주민 간 갈등의 소지는 여전하다. 실제 평산마을 염화득 이장은 비대위에서 빠져 있었고, 이번 일로 스트레스를 받아 며칠째 밤잠을 설칠 정도라고 전했다. 아닌 게 아니라, 평산마을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지산리 들머리의 서리마을 정용구 이장은 비대위 위원장을 맡았었다. 서로 형·동생 하며 친하게 지내던 처지에 서먹해지는 게 한눈에 보였다. 정 비대위원장도 “사저 공사로 이웃 간 갈등이 깊어지는 건 결코 있어선 안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서 “비대위 활동을 중단하기로 했다”고 강조했다.



■사저 논란 없어지려면

이번 사태를 돌아보면서 몇 가지 아쉬운 점을 생각했다. 먼저 양산시의 태도다. 사저 건립에 관한 것만큼은 경호처의 입장 없이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는 점을 무시할 수 없겠지만, 그래도 이렇게 뒷짐만 지고 있는 것이 최선이었을까 싶다. 일어나지 않은 일이지만 “태극기 부대가 몰려오기라도 하면 어쩔 것인가”라고 현실적인 불안을 호소하는 일부 주민의 목소리에 조금은 더 경청하는 자세를 보였어야 했다. 솔직히 도로든 뭐든 새롭게 만들면 “특혜 운운” 할 수 있지만, 대통령 의중 못지않게 대통령을 이웃으로 두게 될 주민 불편을 최소화하고, 예상되는 문제는 공사 단계에서부터 대책을 세우는 게 마땅하다. 소통 의지 부족이 이번 사태의 발단이었던 것처럼 말이다.

경호처 역시 마찬가지다. 대통령 입장에선 조용조용히 일을 처리하고 싶겠지만, 대통령의 선의와 다르게 대통령을 이웃으로 두게 될 주민들이 불편하지 않도록 최대한 배려할 필요가 있다. 경호처 관계자가 “코로나19 확산 우려에 간담회를 개최하면서도 공사와 직접 관련이 있는 평산마을 주민으로 제한했는데, 돌이켜 보니 하북면 주민대표를 초청해 폭넓은 소통을 하는 것이 좋았을 것 같다”고 답변한 것이 그 맥락이다.

비대위 쪽도 건의할 사항이 있으면 당당히 요구하고, 합리적인 선에서 타협해 나가야 한다. 적어도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인상은 주지 않아야 할 것이다. 오죽하면 박재우 양산시의원은 “갈등이 불거지고 시의회 차원에서라도 중재에 나서겠다고 해도 ‘정치인은 빠지라’고 하니 그저 답답한 노릇이었다”고 하소연했다. 그러면서 박 의원은 “적어도 주민 간 갈등을 조장하고 방관하는 정치인이 되어선 곤란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통령의 귀향과 우리의 시선

마지막 시선은 우리의 모습이다. 이번 사태를 지켜보면서 느꼈지만 한국 사회에서 퇴임 후 대통령의 귀촌 귀향을 바라보는 시선은 아직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정치적 호불호를 떠나서, 개인적 이익이나 지역사회 발전과 무관하게 현직 대통령의 귀촌 귀향에 무한한 박수를 보낼 수 없는 것일까. ‘봉하마을’에 대한 평가가 현재로선 거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져 이런저런 불필요한 고민이 생기는 것도 사실이지만, 퇴임 후 ‘잊힌 사람’으로 살고 싶어 하는 문 대통령은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김은영 논설위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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