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 906 >비행기에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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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어느 기사 제목인데, 엉터리다. 이 제목대로라면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오만, 편견, 용기가 모두 없기 때문이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이 말하려 했던 것은 ‘오만하고, 편견이 있는 데다, 용기도 없다’는 것이었을 터. 한데, 제목을 저렇게 달아 놓으니 임종석 전 실장은 용기만 없을 뿐, 오만하지도 않고 편견도 없는 (좋은?)사람이 돼 버렸다.

‘특히 이들은 해당 소장이 열악한 근무환경에서 일하다가 안타깝게 운명을 달리한 택배노동자들에게 천인공노할 비하발언을 했다며 이날 녹취록도 공개했다.’

이 기사에 나온 ‘운명을 달리한’도 어색한 표현이다. ‘죽다’를 완곡하게 표현하면 ‘유명을 달리하다’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유명(幽明)’은 저승과 이승을 아울러 이르는 말. 저승에서 이승으로 넘어오는 일은 없으니, 유명을 달리한다는 건 이승에서 저승으로 넘어갔다는 뜻. 물론 넓게 보면 사람이 죽는다는 것도 운명이 달라진 것이기는 하지만, 반대로, 운명을 달리한다고 해서 꼭 죽는다는 법은 없으므로 저런 용법은 자연스럽지 않다.

말을 정확히 쓴다는 건 상대가 잘못 받아들이거나 왜곡당하는 일이 없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플로베르가 강조한 ‘일물일어’는 문학뿐만 아니라 어학이나 말글살이에서도 훌륭한 지침인 것.





이런 기사 제목에서 껄끄러운 말은 ‘하차’다. 말 그대로 ‘차에서 내린다’는 뜻인 ‘하차’를 비행기에다 쓸 수 있다면, 비행기 탑승을 ‘승차’로 써도 괜찮다는 말이 된다. ‘하기(下機)’라는 말이 있으면 딱 좋겠지만 ‘불교의 진리를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는 능력이 약한 사람’이라는 뜻밖에 없으니 쓸 수 없는 형편. 그러니 ‘강제 하차’는 ‘강제 퇴거’ 정도면 괜찮았겠다. 퇴거(退去)는 ‘있던 자리에서 옮겨 가거나 떠남’이란 뜻.

한데, 굳이 이렇게 한자말에 집착하기보다 ‘쫓겨나다’로 쓰는 게 가장 편하지 않을까. 즉, 이면 얼마나 쉽고 알아보기도 좋은가. 면 얼마나 상황이 더 잘 와 닿는가.



이 제목에서는 ‘전관예우’가 부적절한 말이다. 검사 출신 변호사가 후배한테서 받는 예우는 불법이나 특혜이기 때문. 뭔가 정이 오가는 돈독한 사이라는 느낌을 주는 ‘전관예우’라는 부적절한 말은 ‘불법 전관 특혜’나 ‘불법 전관 비리’로 바로잡아야 할 터.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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