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탁시설마저 꺼리는 확진자 반려동물… “맡길 데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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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사상구에 거주하는 박 모(76) 씨는 최근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 중증장애를 가진 박 씨의 활동을 도와주는 활동보조사가 코로나19에 감염됐고 이어 박 씨에게도 전파된 것이다. 이후 박 씨는 큰 고민에 빠졌다. 반려견 ‘까미’를 돌봐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 3년간 유기견 예방 캠페인에 앞장서는 등 반려견에 대한 애착이 강했던 박 씨는 “코로나 확진도 무서웠지만 혼자 남겨질 까미에 대한 걱정이 더 컸다”고 말했다. 박 씨는 코로나19 확진자의 반려견 위탁 시설을 구청이 지정해 뒀다는 사실을 알고 해당 시설에 연락을 했지만,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퇴짜를 맞았다.

코로나 대비한 민간 위탁시설
구·군마다 1곳씩 지정했지만
인력·격리 공간 없고 감염 우려
반려동물 관리 시설 사실상 전무

부산 시내 16개 구군이 지정한 '코로나19 관련 반려동물 위탁 시설(이하 위탁 시설)'이 사실상 제기능을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정 기준이나 별다른 지원 없이 주먹구구식으로 민간 시설이 지정됐기 때문이다. 현장에서는 시·도 차원의 전담 시설을 마련해 민간에 ‘떠넘기기 식’ 운영을 피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11일 부산시에 따르면 시내 16개 구·군별로 총 20곳의 위탁 시설이 지정되어 있다. 이 중 일부 구는 위탁 시설을 지정하지 못해 다른 구의 위탁시설을 중복 지정해, 실질적으로는 총 15곳이 운영 중이다. 앞서 지난 2월 농림축산식품부는 기초자치단체마다 1곳씩 위탁 시설을 확보하도록 ‘코로나19 관련 반려동물 관리지침’을 발표했다. 확진자 중 반려동물을 맡아 보호해 줄 사람이 없는 상황을 대비한 조치다.

하지만 박 씨의 사례처럼 실질적으로 반려견을 수용할 수 있는 위탁 시설은 사실상 전무하다. 관리 인력이나 격리 공간 등의 환경이 갖춰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위탁 시설로 지정된 한 기관의 관계자는 “현재도 70~80마리의 동물을 돌보고 있는 상황에서 만에 하나 감염이 일어날 경우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전담 직원 배치도 어렵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실제로 확진자의 반려동물을 맡게 되는 상황이 올 줄은 몰랐다”고 덧붙였다.

일반적으로 위탁시설로 지정되는 유기견센터 등 보호시설에서는 많은 동물들이 함께 생활하기 때문에 위탁시설 지정을 꺼린다. 소규모 동물병원이나 애견호텔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구·군 담당자들은 위탁 시설 지정에 애를 먹고 있다. 일부 구청은 민간 시설에 "이름만 올려달라"고 사정해 위탁 시설로 지정했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한 구청의 담당자는 “일선에서는 위탁 시설 확보를 위해 개인적인 인맥까지 동원하며 요청하고 있지만 인력부족과 감염 위험을 이유로 대부분 꺼린다”고 전했다.

이 때문에 현장에서는 민간 시설을 유인할 수 있는 지원책이나 시·도 차원의 전담 기관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사상구청 이원석 산업경제팀장은 “예산 지원이 없어 민간 시설을 위탁 시설로 지정하는 데에 큰 어려움이 있다”며 “시·도 단위에서 코로나19 확진자의 반려동물을 전담하는 공공 시설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탁경륜 기자 tak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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