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 뛰고 월세도 포기… 착한 임대인의 ‘착한 영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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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중구 광복로에 있는 본인 건물의 영세 임차인들을 대상으로 임대료를 인하해 부산시 ‘착한 임대인’으로 선정된 이미희 씨. 정대현 기자 jhyun@

“건물주보다는 ‘단기 알바’ 구직자입니다. 일자리 어디 없을까요.”

10일 오후 1시 부산 중구 광복로에서 만난 이미희(58) 씨가 꺼낸 첫마디다. 일자리를 찾는 이 씨는 다름 아닌 ‘건물주’다. 이 씨는 6년 전 남포동 광복로 중심 도로변에 자리한 4층 규모 건물을 사들였다. 맨 꼭대기는 이 씨의 거주 공간이며, 건물 1층부터 3층까지 카페와 고깃집이 들어섰다. 공실이 없으니 건물주로서는 만족할 만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 씨의 경우는 다르다. 임차인과 마찬가지로 적자를 겪고 있는 데다 당장 생활비까지 걱정해야 하는 처지다.

광복로 건물주 이미희 씨
식당 설거지하며 손실 충당
전포동 임대 사업 지성욱 씨
힘든 임차인에 ‘공짜’ 임대
부산, 착한 임대 동참 급증

이는 이 씨의 본인의 자발적인 뜻에 따라 빚어졌다. 그는 코로나19가 전국을 덮친 지난해 3월 건물 상가 임대료를 인하했다. 남포동 상가 매출의 절반 이상이던 관광객 발길이 한순간에 끊겼기 때문이다. 이 씨는 임차인들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어 주고 싶었다. 코로나19 발생 이전 이 씨의 매달 임대 수익은 500만 원가량이었지만 지금은 300만 원 남짓에 그친다. 대출 이자에 각종 세금, 생활비까지 더하면 이 씨도 적자를 면치 못한다. 게다가 감염병 사태가 길어지면서 인하된 상가 임대료마저 제때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발생한다.

그렇다고 다시 임대료를 올릴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는 결국 지인들의 가게에서 주방 설거지 등을 하며 틈틈이 푼돈을 벌고 있다. 말 그대로 ‘생계형 임대인’이 된 셈이다. 이 씨는 “임차인들이 매출 하락으로 슬픔에 빠진 모습을 보고 고통 분담을 결심했다”며 “나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힘이 닿는 데까지 함께 할 생각”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임대료 인하와 포기를 동시에 선언한 건물주도 있다. 부산진구 전포동에서 10년 넘게 임대 사업을 하고 있는 지성욱(53) 씨는 올해부터 1층에서 장사를 하는 임차인 김 모(65) 씨에게서 임대료 받지 않는다. 2019년 지 씨의 건물에 둥지를 튼 김 씨는 코로나19 여파로 장사가 되지 않아 지난해 말부터 월세를 내지 못한 채 보증금으로 임차료를 지급해 왔다. 최근 보증금마저도 바닥을 보이면서, 김 씨가 장사를 접어야 하는 신세가 되자 지 씨는 임대료를 받지 않겠다고 손을 내밀었다. 지 씨는 김 씨를 포함해 상가 7곳을 임대하고 있다. 이들에게도 절반에 가까운 임대료를 인하하면서 매달 1000만 원이던 임대 수입은 300만 원 수준으로 떨어졌다. 지 씨는 “모두가 어렵고 힘든 길을 걷고 있는 만큼 같이 가야 한다는 마음으로 내린 결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임차인들의 손을 잡아 주는 건물주가 매달 늘고 있다.10일 부산시에 따르면 올해 착한 임대 사례는 올 2월 33건에서 3월 418건, 지난달 559건으로 매달 증가하고 있다. 부산시는 2월 15일부터 착한 임대인 지원 사업을 시작했다. 사업은 상가 임대료를 인하한 건물주에게 시가 재산세(건물분) 부과분 전액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올해 착한 임대 사례는 지난달 말 기준으로 1010건을 기록했으며, 지원 금액은 25억 원을 돌파했다. 이는 사업 시작 2개월 반 만에 올해 목표액(48억 원)의 50% 이상을 넘긴 실적이다. 지난해 접수된 착한 임대 사례 335건에 비해 배 이상 증가했다.

부산시는 현재 관련 지원 예산 증액을 검토할 계획이다. 부산시 송정숙 상생협력팀장은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방안을 고심하겠다”고 말했다. 이정식 중소상공인살리기협회 회장은 “꾸준한 지원을 통해 수혜자 폭을 넓힐 방안을 고민할 단계”라고 강조했다.

곽진석·탁경륜 기자 kwa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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