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땡전 뉴스와 땡문 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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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국 사회부 경찰팀장

‘땡전 뉴스’를 기억하시나요?

5공 시절 오후 9시 종이 ‘땡~’하고 울리면 전두환 당시 대통령의 근황을 전하는 뻔한 관보가 앞다퉈 방송됐죠. 늘 뉴스 첫 꼭지는 ‘오늘 전두환 대통령은~’으로 시작됐고, 다음 꼭지는 ‘한편 이순자 여사는~’으로 이어졌습니다.

항간에는 ‘전두환은 호(號)가 오늘, 이순자는 호(號)가 한편’이라는 웃지 못할 농담도 유행했습니다. 가히 한국 언론의 흑역사라 불릴만한 시절이지요.

2021년 한국 언론사에 ‘땡전 뉴스’에 이은 또 한 편의 흑역사가 보태질 모양입니다. 이번 타깃은 국영방송이 아니라 포털입니다.

더불어민주당 김남국 의원이 이달 초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의 기사 배열 알고리즘 구성 요소와 배치 기준을 공개하도록 하는 법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뉴스 소비의 70% 이상이 포털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으니 포털의 사회적 책임을 높여야 한다네요. 얼핏 맞는 소리 같아 보입니다.

한데, 뉴스 알고리즘은 포털의 영업비밀에 해당하니 전문가 위원회에서 검증해야 한답니다. 물론 그 위원회는 방송통신위원회나 문체부 산하에 둘 예정이고요.

군부시절처럼 포털에 보도지침을 전달하겠다는 의도가 너무 노골적으로 보여 헛웃음부터 나왔습니다. 한번 물어 봅시다, ‘뉴스 알고리즘을 정부 산하 위원회에서 검증받으라’라는 말과 ‘국영방송은 땡전 뉴스 방송하라’는 말은 과연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소주성’ ‘임대차 3법’ ‘내로남불’ ‘K 방역’까지 집권 5년 차를 맞아 포털 검색창에 오르내리는 키워드가 참담합니다. 그렇다고 ‘땡문 포털’ 만든다고 그간의 헛발질이 다 사라지는 건 아닐 테지요. 그야말로 좀스럽고 민망한 짓입니다.

이미 2015년 새누리당에서도 '뉴스 편집 기준과 책임자를 공개하라'고 포털을 압박하다 욕을 한 바가지 먹은 바 있습니다. 당시 야당이던 새정치민주연합은 '포털에 대한 여당의 압력이 도를 넘고 있다'고 힐난했지요. 요즘 포털의 뉴스 알고리즘이 보수 성향의 기사에 편향되어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라면 과거 이런 소동은 설명하기 어려울 터입니다.

아니면 그때 그 알고리즘은 맞고, 지금 이 알고리즘은 틀렸다는 걸까요? 달라진 건 없습니다. 2015년이나 2021년이나 정권이 막바지를 향해 치닫고 있었다는 점이 똑같을 뿐이지요. 임기 초 가려져 있던 정권의 민낯을 비판하는 기사가 쏟아졌던 것도 데칼코마니처럼 똑같네요. 이런 기사들로 자연스레 '사이다'를 찾는 민초들의 클릭질이 이어졌을 따름입니다.

누가 봐도 아래위 3대가 싸잡아 욕 먹을 초선 의원의 이 법안 발의를 민주당에서는 말릴 생각이 없는 모양입니다. ‘땡전 뉴스’의 군부 독재와 맞서 싸운 게 평생의 훈장인 그 많은 586 국회의원 중 누구 하나 ‘땡문 포털’ 법안을 질책하지 않으니 답답합니다.

잘못을 했다면 사과하면 될 일입니다. 질책을 받았다면 고치면 될 일이고요. 허물이 소문나지 않게 틀어막는 게 능사는 아니란 말입니다.

옛말에 ‘군자는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고 했습니다. 네이버 녹색 창이 없던 시절이나 지금이나 바른 처신의 기준에는 큰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k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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