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코로나19, 그 너머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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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룡 부산광역시 동래구청장

미 여류작가 마거릿 미첼의 소설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는 물경 1000페이지가 넘는 대작이다. 압도적인 분량에도 책에서 손을 놓을 수 없었던 이유는 남북전쟁 시기 갖은 역경에도 굴하지 않는 주인공 스칼렛 오하라의 지면을 뚫고 나오는 듯한 생기발랄함 때문이다. ‘나쁜 남자’의 현신인 듯한 레트 버틀러와의 이어질 듯 이어지지 않는 러브스토리는 또 다른 매력 포인트이다. 전쟁으로 남부 대지주의 딸에서 빈털터리로 전락한 스칼렛에게 밀무역으로 떼부자가 된 레트 버틀러는 인상 깊은 한마디를 던진다. “큰돈을 벌 기회는 두 번 있소. 나라가 들어설 때, 그리고 나라가 망할 때…. 그중 더 큰 기회는 나라가 망할 때지….”

레트 버틀러의 저 말이 기억 속에 오래 남아 있다.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고, 미 대륙이 새로 통일되는 격변의 시기에 남들이 보지 못했던 기회를 포착하는 레트 버틀러의 예리한 감각은 코로나19로 고통을 겪고 있는 우리들에게도 큰 시사점을 던져 준다. 4년간의 미국 남북전쟁 당시 남, 북 양측을 합쳐 37만여 명의 군인들이 목숨을 잃었다. 작년 초부터 본격화된 코로나19의 확산 속에서 미국의 사망자는 올 2월 50만 명을 넘어섰다.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자 수가 4년간의 전쟁 기간 전사자 수를 훌쩍 넘는 결과는 우리가 겪고 있는 이 미증유의 재난이 전쟁과 다름 아님을 명백하게 보여준다. 전 세계는 바이러스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적을 상대로 전·후방 구분 없는 총력전을 벌이고 있다.

과거를 살펴보면, 전쟁은 그 전쟁을 겪는 사람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절망과 고통의 혹독한 시간이지만, 인류 전체의 관점에서는 급격한 기술 혁신의 다른 이름이기도 했다. 각 국가는 생존을 위해서 각자 가진 모든 잠재력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적국을 굴복시킬 방법을 찾아냈고, 그 결과 평시에는 기대할 수 없는 온갖 신기술들을 쏟아 냈다. 오랜 시간 음식물을 저장할 수 있는 통조림은 군인들에게 신선한 군량을 제공하고자 하는 나폴레옹의 고민의 산물이었다. 멀리 떨어진 상대방의 영토에 폭탄을 날리기 위한 나치의 로켓기술이 없었다면 테슬라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화성 개발 대신 어떤 꿈을 꾸고 있을까? 동전의 양면과 같이 전쟁의 이면에는 재난의 크기만큼이나 더 큰 기회가 숨어 있을 수도 있다.

행정의 최일선에서 코로나19로 인한 구민들의 어려움을 직접 느끼고, 본연의 업무 외에도 코로나19 방역 업무에 투입되어 피로감을 호소하는 직원들을 바라보는 일은 여간 고통스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전쟁과 같은 날들 속에서도 힘들어만 할 것이 아니라, 누군가는 전략적 사고로 미래를 예측하는 혜안을 가지고 이 난국을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코로나19 이후의 세계는 코로나19 이전의 세계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 경제 구조는 재구성되고, 삶의 방식은 바뀔 것이다. 사회 경제적으로 거대한 변화가 예상되는 대혼돈의 시기, 앞뒤가 꽉 막힌 형국에서도 빈틈을 찾아내는 레트 버틀러의 짐승 같은 통찰력이 필요한 때이다. 젊은 날엔 젊음을 모르고, 사랑할 땐 사랑이 보이지 않았다는 어떤 유행가 가사처럼, 어쩌면 우리는 지금, 지나고 보면 후회할 천금 같은 기회를 흘려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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