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제복지원이 삼킨 땅, 투기꾼 배만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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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형제복지원이 소유했던 울산 A농협 사옥 부지가 편법 거래 등의 각종 의혹을 빚으며 황량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왼쪽). 형제복지원 사건이 1987년 세상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던 울주군 청량읍 강제노역수용소. 권승혁 기자·부산일보DB

속보=유력 정치인 보좌진이던 최측근의 친형이 농협에 팔아 1년 만에 수억 원 시세 차익을 남긴 토지(부산일보 5월 6일 자 1면 보도)는 ‘한국판 아우슈비츠’로 불린 옛 형제복지원(느헤미야 법인)이 착복한 땅으로 확인됐다. 형제복지원에서 유명을 달리한 수많은 피해자에게 돌아가야 할 재산이 투기세력의 배를 불리는 데 악용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6일 오후 울산 A농협이 종합시설 신축 부지로 사들인 북구 토지(6289㎡)는 철제 가림막에 둘러싸여 잡풀이 우거진 채 방치돼 있었다. 공사 기간은 지난해 10월부터 올해 9월까지로 잡아 놓았지만, 공사 기미는 전혀 찾을 수 없었다. 수십 년간 주인만 바뀐 채 빈터로 방치된 이곳은 울산에서도 ‘비운의 땅’으로 꼽힌다. 농협과 정치인 측근 가족의 손을 타기 전부터 형제복지원 땅으로 토지 투자자들 사이에 입소문을 탔기 때문이다. 인근에서 만난 토박이 주민들은 “(형제복지원)박인근 원장의 고향이고, 그의 친지도 남아 살고 있다. (형제복지원 강제노역 현장인)반정목장도 울산 아니냐”며 “박 씨 땅이 이곳 말고도 (북구에)더 있었다고 알고 있다”고 전했다.

형제복지원 13년 소유 울산 토지
유력 정치인 최측근 친형 등 4명
법인 청산 때 42억 원에 낙찰
농협에 되팔아 수십 억 차익
“피해 보상 대신 투기 제물” 비판

부산시에 따르면 울산 형제복지원 땅은 박 원장이 사망한 해인 2016년 7월 법인 청산 과정에서 법원 공매로 팔려나갔다. 당시 유력 정치인 최측근의 형인 B 씨 등 4명이 공매에 참여해 13차례 유찰 끝에 14차 공매에서 42억 원에 낙찰받았다. 해당 토지 감정평가액은 37억여 원이었다.

부산시가 집계한 형제복지원 법인 청산 금액은 울산 토지를 포함해 10개 물건 총 211억 4200만 원으로, 전체 감정평가액 272억 8700만 원을 밑도는 ‘마이너스 청산’에 그쳤다. 부산시 관계자는 “울산 토지 매각대금은 대부분 세무서나 금융당국 등의 수십억 원 압류를 해결하는 데 소진됐다”고 전했다.

형제복지원 청산이 사실상 빈껍데기로 전락하는 사이, 형제복지원 피해자를 위해 써야 할 재산이 정작 투기꾼들의 배만 불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울산 토지만 해도 B 씨 등 4명이 미심쩍은 농협 대출로 자기 자본을 거의 들이지 않고 매입한 뒤 같은 농협에 배 이상 가격에 팔아 1년 만에 수십억 원 차익을 얻었기 때문이다.

B 씨 동생은 “공매로 나온 땅이었고, 형에게 물어보니 언론을 통해 투자 정보를 알았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하지만 A농협 고위 간부는 “(B 씨 등에게 대출을 해 주고)나중에 들었는데, 공매 브로커 비슷한 부동산(업자)들이 ‘이런 게 있으니 투자를 해라. (수익이)남는다. 가압류 등 법적인 문제는 해결 루트를 확인했다’고 해서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농협 측이 B 씨 등에게 땅 매입 자금 상당부분을 빌려주고 1년 만에 되산 과정은 여전히 의혹이 가득하다.

한편 형제복지원은 1970~1980년 부랑자 등 3000여 명에 이르는 사람들을 강제 수용하고 폭행·살인·강간 등 참혹한 인권유린을 일삼아 문제가 됐던 요양원이다. 현재까지 드러난 사망자만 513명에 달한다. 형제복지원 법인은 욥의마을, 형제복지지원재단, 느헤미야 등으로 이름을 바꿔 오다 2016년 법인 해산 명령이 내려지면서 이듬해 완전히 사라졌다. 권승혁 기자 gsh0905@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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