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로 웨이스트’ 전시회, 미래 세대를 생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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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현대미술관 실험적 환경전 1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생태 환경을 주제로 한 실험적 전시를 열고 있다.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은 폐기물 발생을 최소화하는 전시를 직접 실천하는 장이다. ‘시간여행사 타임워커’는 을숙도를 무대로 한 가상의 시간여행을 방탈출 게임에 접목했다.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
조립식 벽에 작품 걸고 폐기물 최소화
전시 홍보 인쇄물은 이면지 활용
작품 설명도 손글씨,‘관습과 결별’ 노력

1t의 탄소를 없앤 전시.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생태 환경전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이하 생태 환경전)에 가면 텅 빈 벽으로 된 작품을 만난다. 스위스 클라임웍스(Climeworks)라는 기업을 통해 실제로 1t의 탄소를 없앤 행위 자체가 전시 작품이 됐기 때문이다. 생태 환경전은 처음부터 끝까지 폐기물 최소화를 고민하는 전시이다.

최상호 학예연구사는 전시장 한쪽 구석에 쌓여 있는 쓰레기 더미를 보여줬다. 이전의 전시에서 나온 폐기물이다. 그는 “환경문제와 관련해 예술계 내부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생태 환경전은 ‘제로 웨이스트(Zero Waste) 전시’를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보여준다. 미래 세대를 생각하는 미술관이 되기 위해 전시 현장 곳곳에서 관습과 결별하는 모습이 발견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재활용이 가능한 조립식 벽 위에 쓰인 ‘지속 가능한 미술관 선언’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보통 조립식 벽 위에 합판이나 석고벽으로 마감을 하고 작품을 걸지만 생태 환경전에서는 조립식 벽 위에 그대로 작품을 건다. 홍보 인쇄물은 이면지를 활용하고, 작품 설명도 캘리그래피 작가가 직접 손으로 썼다. 컴퓨터를 사용하고 프린트를 하는 과정에서도 탄소가 배출되기 때문이다.

선 정리용 플라스틱 관을 사용하지 않아 전선이 그대로 노출된다. 미디어 작품에는 전력 측정기를 달았다. 영상작품 감상용으로 비치된 의자는 김하늘 작가가 폐마스크 1만 5000장을 녹여서 만든 ‘Stack and Stack (In Pandemic)’이라는 작품이다.

생태 환경전은 1980년부터 2020년까지 환경보호 공익광고로 시작한다. 뒤를 이어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자연과 교감하는 인간의 모습을 담은 그림과 사진이 전시된다. 허백련, 이응노, 김복만의 작품과 ‘생태학’이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사용한 에른스트 헤켈의 책에 실린 도판 이미지가 마주 보고 있다.

환경을 생각하는 미술관에 있어서 ‘소장품 공유’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부산 형상미술 발전에 기여한 정진윤 작가의 ‘고압선’, 도시와 농촌을 대비한 신학철의 ‘시골길’ 같은 환경과 관련된 작품을 통해 작가들이 소장품을 공유재로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제주도립미술관과 대만 타이페이에 있는 미술작품을 생중계로 공유하기도 한다.

미술관이 ‘폐기물 최소 전시’를 이뤄내는 데 있어 가장 큰 협력자는 미술가들이다. 작가들이 친환경 재료에 대해 동료 미술가와 고민을 나누는 과정을 영상 작품으로 보여준다.

미국 휘트니미술관이 소장한 더 해리슨스의 ‘Survival Piece #5: Portable Orchard’는 작품을 대여하는 대신 디지털 파일로 받아서 프린트했다. 작품을 디지털로 받는다고 탄소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1GB 데이터를 전송할 때 3kg의 이산화탄소가 배출되지만, 발생량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중요하다. 캐나다 출신 회화작가 줄리엔 세칼디의 작품도 디지털 파일을 작은 종이로 나눠서 프린트한 것을 이어 붙여 8m의 원작 크기를 재현해냈다.

김실비 작가는 “작품에 최적화된 상황이 아님에도, 60여 명의 국내외 작가들이 전시에 참여했다는 것은 기후변화가 시급한 문제라는 사실에 동의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김 작가는 을숙도의 철새를 모티브로 한 영상 작업 ‘길 잃은 유전자’를 전시한다. 그는 작품에 등장하는 철새 체조 안무를 연결하는 QR코드도 직접 손으로 그렸다. 김 작가는 “전시에 참여하면서 인간의 이동이 얼마나 많은 탄소 발자국을 남기는지 생각해보게 됐다”며 “앞으로 물질을 많이 쓰는 전시는 조심스러워질 것 같다”고 덧붙였다.

생태 환경전은 4일 개막했지만 여섯 작품이 아직 설치되지 않았다. 해당 작품들은 뉴욕에서 해상 운송으로 발송됐는데, 수에즈운하 사태로 배송이 지연됐다. 뉴욕에서 부산현대미술관까지 항공 운송 때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왕복 기준 32.2t으로 해상 운송의 40배에 달한다. 미술관 측이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기 위해 일부러 해상 운송을 선택했기 때문에 ‘이유 있고, 의미 있는 배송 지연’이다. 작품은 8일께 미술관에 도착할 예정이다. 부산현대미술관에서 발아한 돌연변이 같은 전시 실험이 관람객에게도 보는 재미와 의미를 선사한다. ▶생태 환경전 ‘지속 가능한 미술관: 미술과 환경’=9월 22일까지 부산현대미술관 전시실 1·야외. 051-220-7400.

오금아 기자 chri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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