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돌고 도는 물류, 영원한 갑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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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영 경제부 해양수산팀장

“코로나19 이후로 갑과 을이 바뀌었다고 보면 됩니다.”

부산의 한 포워더(운송주선업자)의 말이다. 배에 물건을 실어주는 기업, 화주가 갑이었던 시절은 갔다. 지난해 코로나19에서 상대적으로 빨리 회복된 ‘세계의 공장’ 중국이 돌아가기 시작하면서 물건을 실어나를 배가 부족해졌다. 화주 기업은 을이 됐고, 해운 선사가 갑이 됐다. 낮은 해상운임을 즐기던 시절은 이제 옛 이야기가 됐다.

코로나19 이후 해상운임 고공행진
“낮은 운임 즐기던 시절 갔다” 한탄
수출기업·항만·물류업계 고충 쌓여
정부·지자체, 세밀한 지원책 마련을

전 세계의 선박 숫자가 갑자기 줄어든 것은 아니다. 다만, 코로나19 여파로 미국 항만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으면서 하역을 기다리는 배가 늘어난 게 문제다. 특히 미국 서안의 경우 한때 40척에 가까웠던 대기 선박이 점차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대기 행렬이 20여 척에 이른다고 한다. 선박 회전율이 떨어지다 보니, 보복 소비(억눌렸던 소비가 한꺼번에 분출되는 현상)로 폭증한 전 세계의 구매 수요를 감당하기 힘들어졌다.

수에즈 운하 사태는 불난 데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좌초됐던 컨테이너선을 6일 만에 띄우는 데 성공했지만, 그 여파는 한 달 이상 이어지고 있다. 미주 노선에 이어 유럽 노선에서도 지연이 발생하고 있다. 항로별로 1주일가량의 지연이 생기면서 사실상 주 1회의 결항이 생긴 꼴이 됐다.

상하이컨테이너운임지수(SCFI)는 지난달 30일 사상 최고치를 찍었다. 15개 항로의 운임을 종합한 SCFI가 2009년 집계 이후 처음으로 3000선을 돌파했다. 지난 10년간 침체를 면치 못했던 해운업계는 고운임을 즐기고 있다.

반대로 을이 된 화주 기업의 시름은 깊어지고 있다. 웃돈을 얹어 준다고 해도 당장 수출화물을 실을 선박을 구할 수가 없다. 여기에도 세계의 공장 중국이 등장한다. 중국발 수출품을 실어나르기 위해 전 세계 선박이 몰려들면서 우리 기업의 상품을 실을 여유 공간이 부족해졌다. 업계에서는 중국이 ‘물류 블랙홀’로 떠오르고 있다고 한탄한다. <부산일보>는 지난해 말 우리 기업들의 어려움을 들어 ‘중(中), 화물선 싹쓸이… 수출업체 발 동동’(지난해 12월 4일 자 2면 보도)이라는 기사를 내보낸 바 있다.

선박뿐 아니라 물건을 실을 빈 컨테이너(공컨)도 부족하다. 일부 항만에서 하역작업이 늦어지면서 장비도 함께 발이 묶였기 때문이다. 컨테이너 박스 가격도 덩달아 올랐다.

공컨은 부족하지만 화물이 적재된 컨테이너(적컨)은 부산항 장치장에 쌓이고 있다. 선적이 제때 이뤄지지 않은 환적화물에 수출입화물까지 쌓여 신항 장치율이 90%를 넘나들고 있다. 선적할 화물을 찾으려면 컨테이너를 이리 움직이고 저리 움직이고 해야 할 판이다. 부산항이 마비 상태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이 때문에 화물차주들의 대기 행렬도 길어지고 있다. 이 같은 고충은 ‘부산항 신항 장치장, 화물 반입 바늘구멍’(3월 1일 자 13면 보도)이라는 제목의 기사로 다루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물류대란을 해결할 방안이 마땅치가 않다. 전 세계 물류 공급망이 정상화 되어야 하는데, 미국에서부터 중국까지 엮여있는 여러 고리들 중 풀기 쉬운 고리가 하나도 없다. 계속되는 어려움을 최근 기사 ‘컨 쌓을 빈 땅 없다… 부산항 물류대란’(5월 5일 자 2면 보도)에서 다시 다뤘다. 화물차주 한 분이 전화를 걸어와 “매번 기사를 잘 보고 있다. 문제는 항만당국이 뒷짐 지고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또 한 번 분통을 터뜨렸다.

부산전문무역상사협의회 측은 회원사의 피해 사례를 하나둘 모아주며 꼭 신문에 실리도록 해달라고 당부했다. 지면보다 하루 앞서 나간 인터넷 기사보다 신문에 실린 기사 한 줄이 절실한 모양이었다. 부산시와의 협의 때 신문에 난 기사가 큰 근거와 힘이 된다는 이유에서다.

물론 정부나 지자체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국적선사들의 임시선박 투입 덕분에 중소·중견 기업 제품을 일부 수출하고 있지만, 속시원한 대안이 되지 않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요즘 업계의 유행어가 되다시피 한 ‘한진해운만 살아있었어도…’와 같은 가정법에 기댈 수도 없다. 항만당국과 정부, 지자체가 수출기업과 항만·물류 업계의 어려움을 덜어줄 수 있는 세밀한 대책을 내놓아야 한다. 당장 큰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 하더라도 물류의 단계별로 각 업체가 겪고 있는 고충을 덜어줄 실질적인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글로벌 선사들도 고운임을 즐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선박 회전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에 나서야 한다. 영원한 갑도, 영원한 을도 없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고운임이 언제까지 지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최근 몸값이 많이 오른 HMM(옛 현대상선)의 주가 전망이 언제까지 우상향 곡선을 그릴지 아무도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2youn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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