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4·7 보궐선거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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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동원 폴리컴 대표

4·7 보궐선거가 끝난 지 한 달이 지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2016년 제20대 총선부터 5년간 네 번의 선거에서 연거푸 승리하다가 이번에 큰 격차로 패배했다. 민심의 무서움을 깨닫게 해 준 선거였다.

참패 원인은 부동산 가격 폭등, 세금 폭탄, 조국 사태 등 집권당의 오만한 국정 운영과 ‘내로남불’, 두 전직 시장의 성추행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선거 직전 터진 LH 사태는 여기에 기름을 끼얹어 더 큰 격차의 요인이 됐다.

민심의 무서움 깨닫게 해 준 선거
근본적인 참패 원인, 아직도 외면

‘선한 권력의 선한 통치’는 착각
독단·독선 아닌 분권·협치가 해법

민생 대신 지나친 이상 추구 안 돼
초심 회복해 기본 가치 되새겨야


집권 여당과 지지자 일각에선 언론과 부패 세력의 저항을 넘어 유권자의 욕망을 탓하지만, 근본 원인은 적대적 진영 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일천한 인식과 독선에 있다. 지난 시절 보수 정당이 어떤 경로로 와해했는지 두 눈으로 똑똑히 보고서도 국민의 지엄한 심판을 애써 외면한다면 당도 어려워지고 정치도 무너진다. 근본 인식을 바꾸지 않으면 어떠한 혁신도 미봉책에 그칠 것이다.

영원한 권력은 없다. 오만하거나 시대정신을 간과한 권력은 어김없이 국민에 의해 심판받고 교체되는 게 민주주의 정체다. 정치학자 박상훈은 ‘두 개 이상의 정당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이들이 번갈아 집권하는가’ 하는 것으로 민주주의 체제를 규정한다. 일당 독재나 전체주의가 아니라면 민주주의 체제에선 선거를 통한 정권 심판과 교체로 권력을 견제한다.

여당의 전 대표는 틈만 나면 ‘20년 집권설’, ‘50년 집권설’을 설파해 왔다. ‘선한 권력’의 장기 집권으로 기득권 세력과 반대 세력의 방해 없이 개혁을 완성하겠다는 것인데, 오만한 생각이다. 이 생각은 권력에 대한 오해와 착각에서 비롯된다. 두 가지로 요약된다. 하나는 선한 권력에 의한 선한 통치라는 오해와 또 하나는 선한 권력의 장기 집권으로 좋은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착각이다.

하지만 선하고 옳은 권력은 없다. 영국의 정치인이자 역사가인 액터 경은 “권력은 부패하며, 절대 권력은 절대적으로 부패한다”라고 갈파했다. 이는 고대부터 있어 온 보편적인 생각이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권력은 그것을 소유한 모든 사람을 타락시킨다. 처음에는 그것을 사용하고 싶고, 그다음은 그것을 남용하고 싶은 유혹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부패란 경제적 부패만 의미하지 않는다. 오만과 독선의 정치적 부패는 경제적 부패보다 더 폐해가 크다.

권력을 20~30년 정도 틀어쥐면 기득권의 저항 없이 개혁을 할 수 있다고 착각한다. 소위 ‘무균실의 오류’다. “미생물을 연구하면서 정말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 미생물도 절대 한 쪽만 있어서는 안 되더라. 완전히 다른 미생물이 존재하지 않으면 진화를 못 한다. 보수와 진보도 마찬가지다.” 본업인 농사꾼으로 돌아간 강기갑 전 통진당 대표는 자신의 정치 인생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소회를 밝혔다.

독점보다 경쟁, 독재보다 자유, 독선보다 소통, 독단보다 집단 지성에 의한 분권과 협치만이 지속 가능한 사회를 가능하게 한다는 것을 인류는 경험했다. 이질적인 것들의 불완전한 타협이 정치고, 민주주의는 그런 타협의 결과물이다. 진리는 독점할 수 없고, 편식이 몸을 망치듯 한 가지 생각으로 굴러 가는 세상은 없다. 서로 다른 생각과 욕망이 자연스레 갈등하고 정치를 통해 타협하는 게 민주주의의 방식이다. 일방적인 생각만 강요하는 ‘진리 정치’의 무균실에서는 정치와 민주주의가 자랄 수 없다.

권력은 선과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가 아니다. 국가의 목적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데 있다. 고대 중국의 경세서인 <관자(管子)> ‘국송(國頌)’ 편에 “무릇 영토를 보유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은 그 임무가 사계절을 살펴서 농사가 잘되게 하는 데 있고, 그 직분은 곡식을 저장하는 창고가 가득 차도록 하는 데 있다”라고 했다. 공자는 “의식이 족해야 예절을 안다”라고 했으며, 맹자는 “항산(恒産)이 있어야 항심(恒心)이 있다”라며 민생의 안정 없이는 어떠한 교화나 예법도 소용이 없다고 보았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뛰어 넘는 권력의 가치란 없다. 민생을 외면하고 이상에 과도하게 치우치게 되면 국가의 근본 목적을 간과하게 되고 신념과 가치를 먼저 앞세우는 주객전도의 잘못을 범한다.

한계투성이 인간이 만든 권력은 아름답기가 어렵다. 어떤 선의라도 절차는 지켜져야 하고, 어떤 권력이라도 이를 어기면 심판받고 견제받는다. 견제되지 않으면 균형을 잃는 것이 권력의 속성이다. 초심으로 돌아가 국가권력의 근본 목적 그리고 법치, 삼권분립, 협치라는 정치와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를 되새기는 데에서부터 혁신은 시작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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