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준현의 사람 사는 경제] 여보게, 저승 갈 때 무얼 가지고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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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회경제교육연구소장

1980년대 말 일본의 거품 경제가 한창일 때의 일이다. 당시 일본의 기업과 금융기관들은 과잉 유동성을 부동산이나 다른 투기성 자산들을 구입하는 데 사용했다. 특히 엔고(円高) 즉 일본 엔화의 가치 급등은 이들로 하여금 해외 자산의 구입에도 열을 올리게 만들었는데, 부동산과 함께 일본의 부자들이 열광한 것은 바로 해외 미술품이었다. 요즘은 미술품을 이용한 재테크가 흔한 일이지만, 전문가들은 유명 화가들의 작품 가격을 지금처럼 올려놓은 것은 거품경제 시절의 일본 재벌들이라고 말한다. 미술품에 대한 일본 부자들의 행태에는 비정상적인 모습도 많았다. 한 증권사의 회장은 자신이 애장하던 르누아르의 그림을 자신의 관에 넣어 함께 화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는 이야기도 있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는지, 아니면 누군가가 재벌들의 비정상적인 행태를 조롱하기 위해 지어낸 이야기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이런 이야기들이 매우 그럴듯하게 떠돌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중섭 <흰 소> 50년 만에 행적 알아
개인 소유로 공개가 되지 않기 때문
이건희 회장 기증 작품 국보급 다수

정선 모네 피카소의 유명 대표작들
단절된 채 혼자만 즐기는 것 의문
이제라도 유족의 기증이 반가워


<한국현대미술100년전> 같은 기획전시회에서 이중섭이나 박수근 같은 화가들의 작품을 본 적은 있다. 그런데 이런 전시회에 출품된 작품들은 대부분 잘 알려지지 않은 소품들이고, 교과서에서 봤던 이분들의 대표작을 공개 전시회에서 본 적은 거의 없다. 그런 작품들은 공공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더라도 일반인을 위한 전시회에 나오는 일이 흔하지 않거니와, 많은 경우에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어서 잘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중섭 화백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흰 소>라는 작품이 50년 만에 행적이 알려졌다고 한다. 50년 만에 대중에 공개된 것이 아니라, 50년 만에 어디에 있는지 알려졌다는 이야기다. 거꾸로 말하면 온 국민들이 다 아는 이중섭 화백의 대표작이 정작 50년 동안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다는 말이기도 하다. <흰 소>가 발견된 곳은 바로 얼마 전 세상을 떠난 이건희 회장의 수장품 가운데서다. 이 회장이 대단한 미술품 애호가라는 사실은 잘 알려진 바이다. 유족들이 이 회장이 그동안 수집한 미술품과 문화재들을 공공 미술관과 지자체 등에 기증하기로 결정했다는데, 그 숫자가 무려 2만 3000점을 넘는다고 한다. 그 가운데는 우리나라 근현대 화가들의 작품은 물론, 겸재 정선의 <인왕제색도>를 비롯해 국보와 보물 등 국가지정 문화재가 60점이 넘고, 피카소와 모네 등 해외 화가들의 대표작도 포함되어 있다 한다. 언론들은 다투어 미술품에 대한 이 회장의 열정과 유족들의 결단을 칭송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나서서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을 위한 미술관 건립을 검토하라고 지시했고, 박형준 부산시장은 이건희 미술관은 당연히 서울이 아니라 부산에 지어져야 한다고 나섰다. 모두 좋은 일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런 일들이 이건희 회장의 사후에서야 진행되는지가 궁금하다. 왜 이런 일들이 이 회장의 생전에 진행될 수는 없었던 것일까?

엉뚱한 발상이기는 하지만 만약 이 회장이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어서 영원히 세상을 떠나지 않았다면, 아마 이번에 알려진 문화재와 미술품들 대부분은 영원히 공개되기는커녕 어디에 있는지조차 알려지지 않았을 터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들이 한 개인의 수장고에서 영원토록 세상과 단절된 채 혼자만 즐기는 것과 자기 관에 르누아르의 작품을 넣어 함께 화장해 달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 다른가? 돈많은 누군가가 모차르트의 음악을 모두 사 다른 이들은 듣지 못하게 하고 자기만 듣는다면, 누군가가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모두 사 다른 이들은 읽지 못하게 하고 자기만 읽는다면 과연 올바른 일일까? 물론 미술품이든 문화재든 개인이 소유할 수는 있겠다. 하지만 그 작품들을 향유할 권리는 모든 이들에게 공유되어야 한다. 그래서 이제라도 유족들이 작품들을 기증하기로 한 일은 진심으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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