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소유 너머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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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아 소설가

작은 집으로 이사를 했다. 지난 13년간 살았던 집의 절반 크기 정도 되는 곳이다. 이사 전에 집 도면을 그려 놓고 가구 배치를 고민하며 많은 것들을 버리기로 결심해야 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도저히 그 많은 살림살이들을 넣을 공간은 나오지 않았다. 가장 걱정이었던 책들은 미리 조금씩 정리를 해 두었지만 더 이상 버릴 수 없는 한계점이 있었다. 대신에 다른 가구들을 여럿 포기했다. 장롱과 서랍장, 식탁과 화장대를 버렸다. 자잘한 물건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거나 가장 큰 종량제 봉투를 사서 꽉꽉 채워 내놓길 여러 차례 했다. 그러는 동안 속이 후련해지기도 했지만, 어쩔 수 없는 부끄러움도 밀려왔다. 멀쩡한 물건들을 결국 이렇게 다 버리게 될 거면서 참 많이도 샀구나. 일시적 욕망과 근시안적 필요를 충족시키느라 이 많은 물건들을 안고 살았구나.

미니멀리즘에 관심을 갖고 ‘버리기’를 실천하기로 마음먹은 것이 꽤 오래전이었는데 자꾸만 물건들에 미련이 남아 잘 버리지 못했다. 쓰지 않는 물건을 처분하려고 꺼냈다가도 그것이 상기시키는 과거의 기억에 휩쓸렸다가 결국 ‘이건 이렇게 쓰면 되지 않을까?’하고 괜한 창의성을 발휘해 다시 넣어 두곤 했다. 그런데 이제는 강제로라도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고민을 할 여지도, 추억을 떠올릴 여유도 없었다. 그냥 나누고 버리길 반복했다.

절반 크기의 집으로 이사하면서
버리고 버렸건만 짐은 ‘집안 가득’
불안·욕망이 물건 사 모으게 한 듯

소비 사회의 상품 차고 넘치지만
우리의 마음 자리 점점 빈약해져
적게 가지고 넓은 상상력 키워야


그렇게 살림살이를 줄이고 줄여 이사를 왔는데, 막상 짐을 풀고 보니 미니멀 라이프는커녕 발을 어디에 디뎌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 리빙 잡지에 등장하는 단순하고 깔끔한 실내 풍경은 일단 집이 크고 수납공간이 충분해야 나올 수 있는 장면이라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잠은 어디서 주무시려고…?” 이삿짐센터 직원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아무래도 서서 자야할 것 같다고 웃어 넘겼지만, 이사 트럭이 떠난 후 짐으로 가득 찬 방을 바라보고 있으니 진심으로 울고 싶어졌다. 서둘러 정리하지 않으면 정말 선 채로 꾸벅꾸벅 졸거나 이삿짐 위에 기댄 채 잠들어야 할지도 몰랐다. 미련이 남아 차마 버리지 못했던 물건들은 결국 새집에 오자마자 쓰레기통으로 들어가는 신세가 되었다.

따져 보면 우리가 생활하는 데 그리 많은 물건이 필요하지는 않다. 실생활의 소용과 관계없이 그저 일시적 욕망으로 소유하게 된 것들, 시간이 지나 쓸모도 애정도 없어졌지만 버리기엔 아까워서 끌어안고 있는 것들, 언젠가는 사용하게 될 거라고 믿으며 끝내 붙들고 있는 것들이 차곡차곡 내 공간을 잠식한다.

우리 안에는 불안과 욕망이 있고, 밖에는 그것을 부추기는 마케팅이 있다. 감각적인 광고들은 단 몇 초 만에 사람 마음을 사로잡는다. 대부분의 상품들은 결제 버튼을 누르고 하루만 지나면 상자 안에 잘 포장되어 집 앞에 도착한다.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현대를 소비 사회로 규정하고 그것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현대인의 삶은 쏟아지는 상품들에 의해 변화하고 있고, 그 결과 상품 의존적인 존재로 전락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토록 원하던 물건을 사고 나면 우리 마음의 빈자리는 채워질까? 아마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인간의 욕망은 오래된 담벼락의 담쟁이덩굴처럼 끊임없이 자라난다.

물론 모두가 수도승처럼 살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차고 넘치는 물질에 비해 점점 빈약해져가는 우리의 상상력이 문제다. 물질에 얽매이지 않고,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의 가치를 자주 생각할 수 있으면 좋겠다. 소비와 소유 너머의 삶을 풍요롭게 누리면서, 그 동안 우리가 잊거나 잃은 것들을 되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제 나는 예전보다 작아진 집에서 적게 가지고 살아갈 테지만, 또 한편으로는 내가 속한 드넓은 우주 공간을 상상하면서 매일매일 달라지는 지구의 풍경을 제대로 느끼며 지내볼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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