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문화재로 상속세 납부하는 물납제도 도입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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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법무법인 예주 대표변호사

고(故) 이건희 회장의 유족이 문화재와 미술품 2만 3000점을 국가 미술관 등에 기증하기로 하였다. 지난해 간송문화재단이 소장하고 있던 보물 불상 2점을 상속세 부담으로 경매에 내놓으면서 상속세를 문화재나 미술품으로 내는 물납제도를 도입하자는 논의가 꾸준히 제기되었다. 그러나 미술 애호가였던 고 이건희 회장의 컬렉션 처리를 두고 삼성 일가에 큰 특혜를 줄 수 있다는 시선 탓인지, 미술품 물납제 도입 논의는 끝내 결실을 얻지 못했다. 그런데 삼성가에서 며칠 전 미술품을 대거 기증하겠다고 발표함으로써 특혜 시비가 사라졌기 때문인지, 정부와 여·야 정치권은 법안 마련에 적극 나서는 분위기이다.

상속세 물납제를 반대하는 일각에서는 해외 작가의 작품을 국내에서 보호할 근거에 대해서는 의문이라는 의견도 있었다. 그렇다면 적어도 우리나라 국보급, 보물급 미술품으로 상속세를 납부하는 물납제의 도입은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국보·보물·사적 등 국가지정문화재는 지난해 말 기준으로 4132건에 이르는데 그 중 유형문화재를 소유자에 따라 구분하면 국유와 공유를 합친 것보다 사유가 훨씬 많다는 문화재청의 발표가 있었다. 그만큼 우리 문화 재산임에도 쉽사리 접근할 수 없고, 공개도 되지 않은 채 누군가의 금고나 안방에서 보존되고 있는 작품이 많다는 것이다. 사실 이렇게 된 배경에는 정부가 문화재 환수에 소극적이었기에 결국 민간 기업이나 개인 컬렉터들이 국가를 대신해 적극적으로 환수한 덕분이다. 정말 높이 평가되어야 할 부분이다.

유형문화재 개인 소유 훨씬 많아
금고나 안방에 몰래 보존되기 일쑤

국민 문화 향유권 확대 차원에서
국보급 미술품 물납제 도입 시급

부산서도 국보·보물 감상하려면
국립박물관 건립에 적극 나서야

그런데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12조에 의하면, 문화재보호법에 따른 국가지정문화재 및 시·도지정문화재에는 상속세를 부과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개인이 국가지정문화재, 시·도지정문화재를 대대손손 일가의 재산으로, 사유물로 상속하도록 하는 것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문화재를 보유한 개인들에게 적극적으로 세제 혜택을 주고, 상속할 경우 개인 금고 안에 들어 있던 우리 문화재로 상속세를 납부할 수 있게 하여 세상 밖으로 꺼내 놓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여야 한다. 문화재·미술품 물납제는 개인의 희생과 노력이 아닌 제도를 통해 우수한 문화유산을 확보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

미술품 물납제도를 제일 처음 도입한 프랑스는 국가유산을 박물관이 잘 보존할 수 있게 조세 금전납부 원칙의 예외적인 형태로 1968년에 물납제를 도입했다. 영국은 물납을 승인받은 납세의무자는 부담 상속세에서 25%의 세금 감면 혜택을 받도록 하였다. 일본은 우리나라와는 달리 동산에도 물납을 허용하고, 상속세에 한해 미술품 물납을 허용하고 있다. 국민의 문화 향유권 확대 차원에서 이러한 해외 사례를 참고하고, 미술품이나 문화재의 시가 감정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야 할 것이다.

한편, 이번 고 이건희 회장의 유족들이 발표한 컬렉션 기증처를 두고 조금은 씁쓸한 기분이 든다. 국립중앙박물관은 2만 1600여점을 기증받았고, 지역 미술관으로서는 대구미술관, 전남도립미술관, 광주시립미술관, 제주 이중섭미술관, 강원 박수근미술관 5곳과 서울대 등도 총 143점을 기증받았는데, 부산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물론 유족들이 이 회장이 소유한 부산 해운대구 우동에 위치한 토지를 부산 해운대구에 기부하긴 했지만, 그 수많은 걸작들이 부산의 박물관에 기증되지 않은 점은 너무 아쉽다.

제2의 도시, 국제문화관광도시를 자명하는 부산에는 현재 미술 문화재 전문 국립박물관이 없고, 부산시립박물관의 한 해 예산도 턱없이 부족하다. 서울 외에 전주, 공주, 부여 등 소도시에도 존재하는 국립박물관이 부산에는 아직 없다는 사실은 놀라울 정도다. 삼성그룹의 시초격인 제일제당은 부산 서면에서 시작되었기에 만약 부산에 국립박물관이 있었더라면, 이건희 컬렉션의 많은 작품이 부산으로 기증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 박형준 부산시장이 서울, 수도권이 아닌 부산에 ‘이건희 미술관’을 유치해야 한다는 의견을 피력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또한 부산에도 수도권 못지않은 수많은 미술품 컬렉터들이 있는데 만약 미술품, 문화재의 상속세 물납제가 도입될 경우, 그들이 보유하고 있는 미술품과 문화재가 부산이 아닌 타 도시의 국립박물관에 물납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은 정말 문제이다. 지금이라도 부산 지역구 국회의원과 부산시가 관심을 가지고 미술 문화재 전문 국립박물관 건립을 위하여 적극 나서서 서울이 아닌 부산에서도 국보 및 보물을 볼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어야 하고, 부산 시민이 어렵게 확보한 문화 재산을 우리 부산에서 볼 수 있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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