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국과 중국 사이 ‘등거리 외교’ 원칙 고수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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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현 민주평통자문회의 수석부의장

문재인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오는 21일 백악관에서 한·미 정상회담을 갖는다. 양 정상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교착 상태에 빠진 북·미, 남북관계를 비롯해 대 중국 관계, 코로나19 백신 수급 문제 등 여러 굵직한 현안을 다룰 것으로 전망된다. 특히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단초가 제시될지에 국제사회의 관심이 쏠린다.

지난달 29일 자문위원 강연 차 부산을 찾은 정세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은 <부산일보>와 가진 인터뷰에서 “바이든 정부가 앞으로 북핵 문제를 어떻게 다뤄나가느냐에 따라 한국 외교 운신의 폭이 결정 난다”며 한·미 양국은 북핵 문제를 풀기 위한 새로운 접근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내는 등 대북 전략과 협상, 정책을 망라한 대표적인 북한 전문가로 꼽힌다.

21일 문 대통령·바이든 정상회담
미 북핵 해법 따라 ‘외교의 폭’ 결정
핵·수교 문제 ‘단계적인 해결’ 필요

정 부의장은 교착 상태에 빠진 북핵 협상을 풀 수 있는 대안으로 △북 선(先) 비핵화 논리 탈피 △동시 행동 △단계적 해결이라는 ‘신 3대 원칙’을 제시했다.

그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해야 할 이야기의 핵심은 미국이 북한의 선 비핵화 논리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라며 “그동안의 북·미 간 합의는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하면 미국이 북한의 수교 요구를 들어주겠다, 미사일을 포기하면 경제 지원해주겠다는 식으로 매칭해서 이뤄졌는데 미국이 계속 이런 식으로 나가려 한다면 북미협상 자체를 안 하겠다는 게 김정은 정권의 기본 스탠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은 미국이 ‘셈법을 바꾸기 전에는 협상에 나갈 수 없다’고 했는데 뒤집어 말하면 상호주의로 문제를 풀겠다는 입장만 보여주면 얼마든지 회담에 나설 수 있다는 얘기”라고 풀이했다.

그는 미국과 북한이 상호 신뢰가 축적되지 않은 만큼 순차적 접근 대신 동시주의 원칙도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정 부의장은 “핵과 수교 문제를 맞바꾸는 동시 행동 방식으로 협상을 진행하되, 문제가 복잡하고 커서 시간이 걸리는 만큼 ‘원샷’ 방식 대신 단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미 정상 간에 이 같은 접근 방식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된다면 북·미 협상도 급물살을 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번 정상회담에서 문 대통령이 바이든 대통령에게 이 같은 접근 방식에 대해 설명하고, 바이든 대통령이 상당한 정도로 수긍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북한이 바로 움직일 것”이라며 “미국에서 시그널이 가면 북한은 그것이 본심인지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북·미 간 협상을 시작할 것이다. 이런 상황이 되면 우리가 남북관계를 복원하자고 제안하면 북한이 못 이기는 척하고 나설 것”이라고 전망했다.

정 부의장은 현재와 같은 미국의 대북제재 강화나 중국 압박은 북한의 대중국 의존도를 한층 높이게 되고, 남북 간 교류 협력에 있어 우리의 입지가 줄어드는 결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그는 “미국이 북한을 너무 몰아붙이거나 한국을 끌어들여 중국을 압박하려다 보면 결국 북한을 중국에 내주게 되고, 이렇게 되면 되레 동북아 지역에서 미국의 헤게모니가 약화될 수 있다는 인식을 미국민들이 가질 수 있도록 여론을 조성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안보는 미국에, 경제는 중국에 상당 부분 의존하는 실정인 만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 원칙을 견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태우 기자 wideneye@busan.com

사진=강원태 기자 wk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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