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청, 초량지하차도 참사 소송 재판부에 질타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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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7월 시민 3명이 숨진 부산 동구 초량지하차도 참사에 대한 부산 동구청의 책임 의식이 다시 한번 도마에 올랐다. 유족과의 민사 소송 과정에서 “피해자에게도 과실이 있다”고 주장한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지방법원은 지난달 30일 초량지하차도 참사 피해자 유족들과 동구청 관계자를 참석시켜 1차 조정을 실시했다. 앞서 참사 피해자 유족들은 지난 3월 11일 부산지법에 동구청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동구청은 유족 측에 지난달 9일 소송 청구에 대한 답변서를 보냈다.

유족에 제출한 소송 청구 답변서
“무모한 진입 망인 과실도 참작”
유족들 “시민은 누굴 믿어야 하나”
재판부 “행정을 믿는 게 일반적”
구청 2차 답변서엔 문구 삭제해

동구청은 원고인 유족 측에 보낸 소송 청구에 대한 답변서에서 피해자들의 과실이 있다고 주장했다. 동구청은 답변서에 ‘손해배상의 범위와 관련하여 침수위험이 있는 지하차도에 무모하게 진입한 망인의 과실도 어느 정도 참작되어야 할 것’이라고 적었다.

동구청의 이 같은 태도는 유족들이 소송을 제기하기 전 ‘유족과 소송 내용을 다투지 않겠다’던 기존 입장과 배치되는 것이다. 유족들이 소송을 제기하기 전 동구청 측은 “민사 소송 내용을 두고 유족과 다투지 않을 계획이며, 재판 결과에 대해서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다”고 밝힌 바 있다.

유족들은 즉각 반발했다. 유족 A 씨는 “어느 시민이 침수 위험이 있다고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겠느냐”며 “공무원의 행정 처리에 기대어 사는 시민들에게 차도 이용에 대한 책임을 묻는다면, 부산 시민들은 도대체 뭘 믿고 살아야 하느냐”고 분노했다.

조정 담당 재판부도 동구청 답변서의 ‘피해자 과실 책임’ 문구에 대해 질타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판부는 조정회의에서 “일반 시민은 비가 오더라도 ‘차도가 위험하다’고 생각하기 보다 안전 조치와 관련한 공무원 행정 처리 등 나라(국가)를 믿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그런 믿음을 갖게 하는 것이 행정과 공무원의 역할”이라고 지적했다.

동구청은 유족 측이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하자 지난달 14일에서야 2차 답변서를 보내 자신들의 입장을 철회했다. 동구청은 2차 답변서에서 '1차로 제출한 답변서에 일부 문구의 오기가 있어 위 제출한 답변서를 철회하고 답변서를 다시 제출한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최형욱 동구청장은 “구청 측 법률 대리인이 조정을 하는 과정에서 해당 문구를 쓴 것 같다”며 “유족의 항의를 듣고 답변서를 즉시 수정했다”고 해명했다. 문구를 작성한 동구청 법률 대리인 측도 “사건 발생은 안타깝지만 운전 자체가 위험부담이 있는 행위였다보니, 손해배상청구에서 상대의 책임도 일정부분 참작을 해야 했다”며 “빠른 법률 조정을 위해서 형식적인 논리를 해당 문장으로 언급했던 것”이라고 밝혔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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