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판 생선이 주인공인 자갈치 시장 그림 보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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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광화랑 ‘붉은색의 화가’ 박윤성 초대전

박윤성 ‘자갈치’(2020). 미광화랑 제공

어시장의 생선들이 춤추듯 화면을 채운다. 150호짜리 작품 ‘자갈치’에서는 좌판 위 수산물들이 주인공이다. 사람이 아닌 생선이 주인공이 된 자갈치 시장을 그린 사람은 서양화가 박윤성이다.

지난해 완성한 이 작품에 박 작가는 지금까지 자갈치에서 보고 듣고 느낀 누적된 기억들을 풀어냈다. “고등학교 때 부산으로 왔는데 자갈치 시장에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봤죠.” 진주 남강의 나무 나룻배를 보던 작가에게 쇠로 된 배가 떠다니는 자갈치 앞바다는 충격 그 자체였다. “언젠가 자갈치를 그려보리라 늘 생각했어요.”

수산물을 하나하나 찾아보는 재미를 주는 그림 오른쪽에 고래가 보인다. “지금이야 상업포경이 금지됐지만, 예전에 집채만한 고래에 사다리를 놓고 사람들이 올라가서 작업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어요. 그림에 넣을까 말까 고민을 했는데, 지금까지 내가 본 자갈치 풍경을 모두 표현하고 싶었죠.”

‘붉은색의 화가’ 박윤성 초대전이 부산 수영구 민락동 미광화랑에서 10일까지 열린다. 박 작가는 2019년 송혜수 미술상 수상자이다. 박 작가는 경남 진주에서 대를 이은 백골장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대학을 못 갈 형편이었는데 삼촌이 교육대학에 들어가라고 하시더군요.” 박 작가는 교직을 통해 생활인과 화가 생활을 병행할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을 때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만드신 소반에 옻칠하던 것이 떠올랐죠.” 붉은 색을 낸 옻칠 도장법 ‘주칠’을 떠올리게 하는 붉고 굵은 선으로 풍경을 그렸다. 이것은 그에게 ‘붉은색의 화가’라는 명칭을 선사했다. 전시된 1975년 작 ‘촉석루’, 1986년 작 ‘바다’, 1994년 작 ‘닭’, 2010년 작 ‘삼존불’ 등 전시장 곳곳에 걸린 작품들이 붉은 기운을 선사한다.

박 작가는 고 김종식 화백의 제자이다. “용두산공원에서 전시를 했는데 그걸 보시고 ‘이 그림 그린 친구를 데려오라’고 하셨죠. 선생님을 찾아 가니 ‘앞으로 술 먹을 때 내 옆에 앉으라’고 하시더군요.” 아이들을 가르치며 그림을 그리던 박 작가는 1992년 전업작가로 변신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박 작가의 1975년부터 2021년까지의 작품을 보여준다. ‘범어사일주문’ ‘하구언(다대포)’ ‘운주사’ ‘밤바다’ ‘대둔산’ 등 거칠면서도 따뜻하고, 향토적 서정성이 드러난 그림들이다. 그의 그림이 친근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전통미술의 미감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박 작가는 “우리 민족에게 그림의 기본은 불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불화 공부도 많이 했죠”라고 밝혔다.

가장 최근작 ‘블랙홀’은 코로나 시대 마스크를 형상화한 작품이다. “코로나에 무엇이든 다 빨려 들어가는 것 같은 느낌을 표현했어요.” 빗살무늬 토기의 느낌을 주는 독특한 바탕 처리가 인상적이다. 바탕에 빗살무늬를 넣고 그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최근 10년 이내의 작업에서 나타나는 화법이다. 박 작가는 “빗살무늬 토기를 현대적으로 작품에 결합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꾸 변신을 하고 싶어서 이런저런 변화를 줍니다. 결국 내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이죠.” ▶박윤성 초대전=10일까지 미광화랑. 051-758-2247. 오금아 기자 chr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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