갇힌 삶에서 벗어날 좁고 긴 선형공원 도심 곳곳에 만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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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콘서트’서 유현준 건축가 주장

“코로나19 시대가 되면서 공간의 양극화가 심화하고 있습니다. 이걸 해소해 줄 공간으로, 지역 간 소통에 유리하고 많은 사람이 골고루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선형공원(線形公園)이 도심 곳곳에 많아져야 합니다.”

부산문화회관과 부산일보 주최로 지난달 30일 부산문화회관 중극장에서 열린 ‘BSCC 인문학+콘서트: 향연’에 초대돼 ‘어디서 살 것인가?’를 주제로 강연한 유현준(유현준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는 이날 도시공원의 역할과 그 중요성을 특히 강조했다. TV ‘알쓸신잡’에서 ‘지적 입담’으로 인기를 끌었던 그는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와 <어디서 살 것인가>의 저자다. 최근에는 <공간의 미래>라는 책을 펴냈다.

이날 인문학 콘서트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한 상황(50% 기준)에서 전석 매진됐다. 그는 코로나 시대가 건축공간에 미치는 변화를 비롯해 ‘도시공원의 역할’과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공간’ 등에 관한 얘기를 1시간 동안 속도감 있게 들려주었다.

특히 공원에 관해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갇힌 일상 속에서 어느 때보다 도시공원의 역할과 그 중요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유 건축가는 “정방형의 공원보다는 많은 사람에게 혜택이 돌아갈 수 있고, 소셜 믹스(사회 통합)에 유리한 좁고 긴 선형공원이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많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렇다면 선형공원을 조성할 땅은 어떻게 확보할까. 유 건축가는 “도심 속에 땅이 부족하기에 도로 지하에 자율 주행 전용 물류 터널을 뚫고, 도로 위에 공원을 조성하면 그게 선형공원이 된다”면서 구체적인 공원 조성 방법까지 제시했다.

공원은 사실 크기보다는 분포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만평 짜리 공원 하나를 만드는 것보다, 지역 간 차별을 완화할 수 있는 1000평짜리 공원 열 개를 만드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외국에서는 공원이 시민들의 휴식처 역할을 하는데, 우리나라는 그걸 도시 안팎의 카페들이 담당하고 있다고 해 청중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부산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우리는 공원이 부족하다는 얘기를 많이 하는데, 이유는 평평한 녹지가 적고, 대부분 기울어진 땅으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도시 계획이 좀 잘못된 것이죠. 대한민국에서 가장 심각한 곳이 부산입니다. 기울어진 산지로 돼 있어 평지가 거의 없기 때문이죠.”

걷고 싶은 도시 거리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드러냈다. 유 건축가는 “걷고 싶은 거리가 되기 위해서는 100m를 걷는 동안, 가게 입구가 30개 이상은 있어야 한다”면서 “이걸 소위 ‘이벤트 밀도’라고 하는데, 서울 홍대 거리는 34개, 명동은 36개, 세계에서 가장 매력 있는 거리라는 소리를 듣는 스페인 람블라스 거리는 40개 정도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가게 입구가 많다는 것은 변화가 많고, 우리에게 선택권이 많다는 것으로, 마치 TV 채널 선택권이 다양하게 주어진 것과 같다고 얘기했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아파트 담장은 걷고 싶은 거리를 갉아 먹는 존재라고 꼬집었다.

유 건축가는 이렇게 걷고 싶은 거리가 연결되고, 더 늘어나면 지역 간에 더 융합되고 격차가 없는 도시가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걷고 싶은 도시가 되는 특별한 방법도 제시했다. “한쪽에 지하철이 있고, 반대쪽 1.5km 떨어진 곳에 공원이 있으면 둘을 연결하는 거리가 걷고 싶은 도시가 됩니다. 대표적인 곳은 미국 보스턴의 뉴베리 스트리트입니다. 한국은 서울 신사동 가로수길로 신사동역과 한강공원까지 1.1km 구간입니다.”

유 건축가의 공간에 대한 관심은 어느덧 우리가 사는 주거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코로나19로 바깥으로 잘 못 나가는 상황이 되면서 주거 내에서 야외 공간을 체험할 수 있는 게 필요해졌다. 그게 바로 발코니 공간이다. 일반적인 발코니 공간보다 더 넓고, 하늘도 열려 있고, 비도 바로 맞을 수 있고, 심지어 나무도 심을 수 있는 그런 발코니 공간이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서는 불합리한 건축법도 바뀌어야 한다면서 디자인이 바뀌면 사회가 바뀐다는 말도 했다.

유 건축가는 “미래는 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창조하는 것이다”라는 말로 이날 강의를 끝맺었다. 글·사진=정달식 선임기자 dos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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