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성원 칼럼] 낙동강 포럼, 메가시티 끼고 유유히 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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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설실장

낙동강은 부산 기자들에게는 주요한 출입처(?) 중 하나다. 강이 알아서 보도자료를 내놓는 편의까지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뉴스거리를 찾는 언론으로서는 낙동강이야말로 마르지 않는 뉴스의 샘물이요 화수분이다. 비가 와도, 오지 않아도 문제다. 때가 되거나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녹조와 유해화학물질로 한바탕 소동이 일어나곤 한다. 낙동강 원수를 식수원으로 삼은 부산으로선 낙동강은 곧 생명수다.

3월 14일은 국내 환경운동의 새 장을 연 역사적인 기념일로, 낙동강이 뉴스의 중심에 섰다. 1991년 경북 구미 공업단지에서 발생한 ‘낙동강 두산전자 페놀 유출 오염사고’가 꼭 30주년을 맞았다. 이달 들어서도 낙동강은 사람들의 관심사다. 장어 치어인 실뱀장어가 바다에서 강으로 이동하는 때에 맞춰 지난 26일부터 5월 21일까지 낙동강 하굿둑의 수문이 열리고 있다. 하굿둑 완공 32년 만인 2019년 6월 수문을 개방하자 연어를 비롯한 회유성 어종이 돌아왔다는 뉴스에 사람들이 마냥 설레던 차다.

대구시장 ‘부산과의 통합·상생’ 주창
갈등 넘어 영남권 메가시티 제안
낙동강 정치 생태계 미묘한 변화
 
‘물 문제’ 등 상호 신뢰 회복이 우선
포럼 창설 계기 PK·TK 접점 넓혀
낙동강 공동체 회복의 길 찾아야

낙동강 정치 생태계에도 변화가 생겼다. 가덕신공항으로 부울경과 대립각을 세웠던 권영진 대구시장이 부산을 찾아 대구와 부산의 통합과 상생을 강조하고 나섰다. 박형준 부산시장 인수위원회 격인 부산미래혁신위원회 초청으로 지난 22일 열린 특강에서 권 시장은 “부울경(동남권) 메가시티를 넘어 영남권 메가시티, 궁극적으로는 호남까지 아우르는 남부권 경제공동체를 만들어야 한다”며 “부산은 ‘지방 도시들의 맏형’이니 그 리더가 되는 꿈을 꿔야 한다”고 말했다. 돌아온 것은 연어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낙동강 생태계가 살아나고 더불어 유역 사람들의 공동체가 살아나는 것은 대단히 바람직하며 환영할 만한 일이다. 권 시장의 부산 방문을 계기로 부산과 대구의 정·재계를 아우르는 가칭 ‘낙동강 포럼’ 창설에 합의를 본 것은 소중한 첫걸음이 아닐 수 없다. 낙동강 유역을 함께 살아가는 대구·경북(TK)과 부산·경남(PK)이 그동안의 묵은 감정을 털어 내고 상생과 화합을 다질 절호의 기회를 맞은 것이다.

하굿둑 수문을 여는 데 32년 세월이 걸렸는데 지역감정의 빗장을 여는 일이 호락호락하지는 않을 것이다. 4·7 보궐선거를 통해 국민의힘 출신 부산시장이 등장한 게 같은 당 소속 대구시장을 부른 동력인 듯하다. 여당 소속인 김경수 경남도지사와 송철호 울산시장도 부산에 초청한 박 시장의 너른 품으로 봐서는 기우에 그치겠지만 정치공학적 낙동강 공동체 회복은 경계할 일이다. TK와 PK를 한데 묶을 것이냐 분열시킬 것이냐, 정치적 유불리를 놓고 주판알을 튀기는 일은 더는 없어야 한다. 내년 3월 대통령 선거와 6월 지방선거를 앞둔 민감한 시기 아닌가.

단번에 모든 걸 해결하겠다는 정치적 유혹은 경계의 대상이다. 특히 중앙권력을 동원해 지방의 문제를 한꺼번에 풀겠다는 것은 선거 유세에서나 가능한 사탕발림이며, 강고한 중앙집권체제 아래에서는 가능하지도 않다. 믿을 건 자치분권과 균형발전이다. 동남권 메가시티든 남부권 메가시티든 지역의 강력한 연대가 공룡 같은 수도권에 맞설 마지막 희망이다.

전국 신문, 방송, 통신 60개사의 논설·해설실장과 편집·보도국장 이상급 간부를 회원으로 둔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에서 지난해 10~11월 부산과 광주를 오가며 ‘편집국장 회의’를 가진 바 있다. 사상 처음으로 PK와 TK 언론사 편집국장들이 머리를 맞댄 ‘영남 편집국장 회의’에서 “부산·경남 언론과 대구·경북 언론이 상대지역을 물어뜯는 보도를 지양하고, 세종시 등 충청권까지 영역을 확대한 수도권에 맞서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호남 편집국장 회의’에서는 영호남을 아우르는 ‘영호남 남부 광역연합’을 제안했다.

지역 언론사들이 저마다 생존을 걱정하고, 지방 또한 소멸을 우려하는 판이라 언론사 간 연대나 메가시티 같은 자치단체 간 연대가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구미 당기는 제안이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눈앞의 작은 것을 놓고 아웅다웅하는 것은 시쳇말로 ‘노답’이다. 대한민국과 언론계의 생태계를 바꾸지 않는 한 지방과 지역 언론의 살길은 요원할 뿐이다.

연대는 신뢰 회복에서 움튼다. 낙동강 상류에서 하류에 이르기까지 물 문제 등을 풀어 나가면서 공동체 의식을 먼저 복원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문화, 관광, 경제 등 공동체 전역에 걸쳐 상생의 길을 찾는 게 순리다. 낙동강 포럼은 TK와 PK 간 소통의 콘트롤타워로 기대된다. 내년 4월 출범을 목표로 하는 부울경의 동남권 메가시티는 더 속도를 내고, 영남권 메가시티는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을 닮아 접점을 넓히는 데 노력할 필요가 있다. 언제나 그렇듯 낙동강은 영남의 젖줄이다. 낙동강이 살아야 유역을 사는 부산·경남과 대구·경북의 영남이 살아난다. fores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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