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미나리’의 또 다른 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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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석 문학평론가

영화 ‘미나리’가 해외와 평단에서 긍정적인 반응을 얻더니, 끝내 미국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했다. 한국 영화계로서는 2020년 ‘기생충’ 이후 다시 한번 아카데미상에 다가가는 성과를 획득했다. 영화 강대국이자 세계 영화의 분명한 중심 중 하나인 미국의 오스카는 수상 의미와 파장이 남다르다는 점에서, 윤여정 배우의 수상은 분명 기억할만한 한국 영화의 사건이라 하겠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수상과 관련된 또 하나의 주목이다. 배우의 수상 과정에는 항상 수상 소감이 따르기 마련이고, 평범하지 않은 수상 소감은 영화만큼 깊은 기억을 남기기도 한다. 가령 한 배우가 시상식장에서 출연한 영화에서 자신이 한 것이 없으며 자신은 스태프가 차려놓은 밥상에 숟가락만 얹었을 뿐이라는 겸손한 발언은 지금도 많은 이들의 뇌리에 남아 있다.

윤여정 오스카 수상 소감 특별해
유창하면서 쉽고 간결한 영어 구사

그럴듯한 말을 고르는 대신
상대방과 교감하는 데 최선 다해

인간 마음·화술에 대한 이해력 높아
윤여정은 천생 배우일 수밖에 없어

이번 윤여정 배우의 수상 소감이 특별했던 것은 입담 때문이었다고 외신과 국내 언론은 입을 모으고 있다. 난처한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는 태도나 적절한 농담을 섞으며 뼈 아픈 일침을 잊지 않는 그녀의 화술은 확실히 놀라운 데가 있었다. 하지만 나에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것은 약간 다른 데에 있었다. 그것은 그녀가 구사하는 문장의 수준과 순도였다. 이미 많은 언론 보도와 후일담을 통해, 그녀의 영어 실력이 뛰어나다는 점은 알려졌으니, 그 점에 대해서는 생략하기로 하자. 내가 주목하는 점은 그녀의 영어가 매우 쉬웠다는 사실이다. 영어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도 알아들을 수 있을 만큼. 그녀의 영어는 일견 평범해 보였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간결한 말은 불필요하게 복잡하고 장황한 말보다 더 구사하기 어려운 법이다.

대학에서 강의를 하다 보면 이러한 현상을 더 분명하게 목도한다. 일방적인 교수법에 길든 학생들은 발표나 토의 혹은 토론 등의 대화에 약점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 요즘 학생들은 더 많은 미디어에 노출되어 있고, 과거보다 더 많은 사람과 접촉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전보다 대화 능력이 향상되었다는 증거는 좀처럼 나타나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수업에서 학생 발표를 병행하는 방식이 선호되곤 한다. 음성언어에 의한 소통을 공식적으로 훈련시켜야 한다는 절박함은 발표 수업을 늘리는 이유가 된다.

대화를 잘하지 못하고 자신의 견해를 잘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여러 가지일 것이다. 하지만 그중 중요한 핵심 요인으로 말과 글이 다르다는 사실을 꼽지 않을 수 없다. 발표 초안은 글로 작성하지만 이를 음성언어로 발표할 때, 대단히 이질적인 커뮤니케이션 수단으로 변모한다는 사실을 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기 때문이다. 발표장에 들어선 학생들 상당수는 무작정 외운 초안을 읊거나 발표 자료에 눈을 고정하고 그냥 읽곤 한다.

윤여정의 화술이 다른 점이 여기에 있었다. 그녀는 정보 전달이 아니라, 그곳에 모인 사람들과 감정을 주고받으려 했다. 물론 그녀의 방식에는 사전에 준비를 할 수 없는 아카데미상의 기본 성격도 작용했고, 그럼에도 소감을 발표할 수 있는 유창한 영어 실력도 뒷받침되었겠지만, 그녀의 화술이 유독 빛났던 이유는 그럴듯한 말을 고르는 대신 상대와의 교감에 최선을 다한 데에 있지 않나 싶다. 그녀가 고른 단어는 쉬웠고, 그녀가 구사하는 문장은 평범했지만, 그녀는 그 상황에서 자신이 전달하는 마음과 의미 진폭에 그 누구보다 충실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녀의 그러한 태도가 지금의 영예를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언제가 한번 건넸던 말처럼, 그녀의 마음이 그녀의 연기를 만들었고, 지금의 격조 높은 대화마저 만들었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과 화술을 이해하는 그녀는 천생, 배우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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