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교대는 누구를 위한 곳인가? - 대학 통합 논란에 부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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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성 부산교대 사회교육과 교수

부산교대가 곧 부산대에 ‘흡수통합’될 것이라는 소식에 학생회와 동창회가 들고 일어섰다. 지난 19일 체결된 MOU(양해각서)에 대해 마치 을사늑약쯤이라도 되는 듯 분기탱천하여 ‘원천무효’를 주장하고 있다. 학교 본관에는 총장이 이완용이라고 적은 조화까지 등장했다. 이러한 극한 대치 속에서 남은 카드는 각자 주장의 보편적 정당성을 공론장에서 인정받는 것이다. 그저 ‘우리는 반대한다’는 주장만으로는 설득력을 얻기가 힘들다.

교육대학교의 전매특허인 ‘초등교육의 전문성’은 실로 진지한 토론이 필요한 사안이다. 대학입시에 찌든 중등교육에 비해 상대적으로 나을지는 모르지만, 우리 초등교육은 늘 업계의 넉넉한 자기평가에 만족해왔다. 일선 교사들의 노력을 폄훼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인성과 능력을 키워줄 교사의 자질은 정해진 한계가 없다. ‘선생님, 하늘에 왜 별이 떠 있나요?’라는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대한 정답은 존재하지 않는다. 자연과학의 지식이 많다고, 시적인 감각이 있다고, 아동 심리에 정통해있다고, 혹은 그저 말주변이 좋다고 해서 옳은 대답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초등교사 양성은 교대 안의 교육과정에만 맡기기에는 너무나 중요하다. 초등교육을 담당할 교사들은 더욱 넓은 사고, 인문학적, 예술적 혹은 과학적 상상력, 또한 정치적 판단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어쩌면 학령인구 감소로 인해 발생할 대학 운영의 어려움 등은 부차적인 문제인지도 모른다. 과연 MOU의 ‘원천무효’를 주장하는 이들은 산업화 초기의 단과대학 모델인 교육대학의 협소한 틀을 고수하면서도 향후 근본적인 교육 혁신의 과제를 해결해갈 수 있다고 믿는가? 아니면 다들 소규모이고 별반 차이도 없는 교육대학들끼리 결합해서 충분히 개방적이고 폭넓은 교육과정을 제공할 수 있다고 정녕 믿는가? 절실한 사회적 요청 앞에서 그들은 대체 어떠한 현실적인 대안을 지니고 있는가? 혹여 동창회의 친목이 교육의 미래보다 더 중요하다는 말인가?

MOU 체결의 반대자들은 학내 구성원과 동문의 의견을 무시한 ‘졸속 통합’을 비판한다. ‘절차’에 대한 문제 제기는 언뜻 그럴듯해 보이지만 보다 중요한 원칙을 덮어버린다. 과연 모두의 의견을 듣고 다수결로 결정하면 민주적이고 정의로운가? 그것은 오히려 반개혁이 아닌가? 모든 집단은 자신들의 이익을 빼앗기기를 원치 않는 법이다. 그래서 어떤 사안을 내부적인 시각으로만 보면서 자신들의 주장이 지닌 보편적 정당성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민주적 결정이 아니라 담합이며 정의는커녕 집단이기주의일 수밖에 없다. 단순한 자기주장은 물론, 형식적인 대화와 타협도 지양하고 ‘내용’에 대한 치열한 경쟁을 통해 결론에 도달하는 원리를 우리는 ‘숙의 민주주의’라고 부른다. MOU 체결은 논의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앞으로 얼마든지 내용에 대한 토론이 가능하다. 실로 절차에 대한 거듭된 문제 제기는 어떤 사안의 결정을 반대할 때 활용하기 쉬운 수단이다.

엄연한 국립대인 부산교육대학교는 학내 구성원이나 동문들의 소유물이 아닌 만큼 국가 전체의 이해가 걸린 사안을 결코 도외시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독재정권의 부당한 요구라면 모르겠으나 국가의 백년대계를 준비하는 일이라면 나만의 이해타산에 매몰되어서는 곤란하다. 더구나 현재 논의되고 있는 통합의 방향은 부산교대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도 아니다. 초등교육의 전문성과 독자성을 유지하는 것은 통합의 대전제이다. ‘흡수통합’이라는 예단은 그저 반대의 구실일 뿐이다. 어차피 지금은 토론을 시작하자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결정된 바가 없다. 이제 MOU 체결로 마련된 넓은 토론의 장에서 국가의 백년대계, 지역사회의 부흥, 양교의 중단 없는 발전을 위한 진지한 숙의에 전념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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