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 버리는 쓰레기 재활용 전에 재사용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환경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위기가 목까지 차올랐다는 걸 알게 돼요.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을 생각하면 너무 무서웠죠.”

시작은 다음 세대를 위한 고민이었다. 식품 배송 주문을 할 때마다 쌓이는 아이스팩을 재사용할 수 없을까. 겔 형태 아이스팩을 채운 고흡수성수지는 미세플라스틱의 일종으로 재활용이 되지 않고, 종량제봉투에 담아 버려도 타지도 썩지도 않는다. 부산 금정구 장전1동에 사는 김유현 씨는 동네 엄마들과 함께 머리를 맞댔다. ‘다음 세대를 위한 엄마들의 공동체’ 어울림 마을공동체의 출발이다.

장전1동 어울림 마을공동체 주민들
아이스팩 재사용 시스템 이끌어 내
월 평균 2500개 수거해 시장서 재사용
코로나19로 늘어난 일회용품도 문제
1년간 식기 86억 개, 컵 84억 개 사용
정부·지자체, 쓰레기 문제 적극 나서야


처음에는 막막했다. 재사용하려면 수거, 선별, 세척의 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수소문을 해도 선뜻 나서는 곳이 없었다. 김유현 어울림 대표가 일단 수요처를 찾아 한 달 반 동안 무작정 전화를 돌리고 또 돌렸다. 하나씩 응답이 오기 시작했고, 지난해 2월 장전1동 행정복지센터, 한국환경공단 부산울산경남지역본부와 부산시상인연합회, 철마청년협동조합이 동참해 아이스팩 재사용 캠페인을 위한 협약이 성사됐다.

처음에는 코로나19로 자원봉사자 모집이 어려워 어울림 회원 5명이 직접 나섰다. “쉬는 날을 쪼개서 행정복지센터 주차장 한쪽에서 목욕탕 의자에 앉아서 고무 ‘다라이’를 놓고 세 시간씩, 다섯 시간씩 아이스팩을 세척했죠.” 환경공단 직원들과 미리내행복마을 등 다양한 주민 조직이 차례로 자원봉사 바통을 이어받았고, 10월 말부터는 코로나19 희망일자리사업과 연계됐다. 지금은 일자리사업 참여 주민 4명이 싱크대 작업공간에서 일한다. 올해는 기존 장전1동 행정복지센터에 더해 금정구 아파트단지 2곳과 대진전자통신고에도 수거함이 생겼고, 세명기업사가 수거를 돕고 있다. 현재 월 평균 2500개가 수거돼 구포축산물도매시장 등에서 재사용된다.

환경부에 따르면 고흡수성수지 아이스팩은 2019년 기준 2억 1000만 개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2016년 대비 배가 늘었다. 친환경 아이스팩 도입이 늘고 있지만 최근 한국소비자원 조사에서도 주요 유통사 아이스팩 열 개 중 네 개(38.6%)는 고흡수성수지 제품이었다. 환경부는 2023년부터 고흡수성수지 아이스팩에 폐기물부담금을 부과해 재사용이나 친환경 제품 전환을 유도할 계획이다.

주민 주도로 민관 협치 모델을 이끌어낸 어울림의 캠페인은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공동 수거-세척-재사용 시스템의 모델을 보여준다. 이 시스템은 대표적인 일회용품 쓰레기 배출 분야로 지목되는 배달업과 카페에도 적용될 수 있다. 정부는 2018년 기준으로 전국의 배달용품 식기류는 40억 개, 접시·용기는 46억 개 사용된 것으로 본다. 같은 해 일회용 컵 사용은 연간 84억 개에 달한다.

환경부는 올해 스마트그린도시 공모 사업의 하나로 인천 서구에서 배달음식점을 대상으로 공유용기를 세척해 대여해주는 서비스를 시행할 예정이다. 일회용컵의 경우 내년 6월부터는 보증금 제도가 시행되지만 다회용컵 활용이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다. 서울 일부 지역에서는 사무실 밀집 빌딩 거점 스타트업이나 동네 카페들의 연합 형태로 다회용컵 제도가 시도되고 있다.

독일 프라이부르크 시민은 시와 공기업 주도 캠페인을 통해 지역 대부분 카페에서 1유로의 보증금을 내고 다회용컵을 테이크아웃하고 반환할 수 있다. 스타벅스코리아는 이와 비슷한 방식으로 2025년까지 매장 내에서 일회용컵을 완전히 없애겠다고 발표했다.

“쓰레기를 근본적으로 줄이려면 재활용보다 재사용이 앞서야 한다.” 자원순환시민센터 김추종 대표는 “정부와 지자체는 다회용품 활용 관련 기업을 육성, 지원하는 것을 포함해 쓰레기 문제에 예산을 투자해야 한다”면서 “기업이나 매장, 소비자도 일부 비용을 분담할 수 있겠지만 일회용품 쓰레기로 인해 지구가 짊어질 미래 부담과 비교한다면 훨씬 적은 비용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기 위한 기업의 노력도 필수다. 배달 플랫폼 기업 배달의 민족은 지난해 4월 일회용품 수저를 받지 않는 옵션을 추가해 7개월 동안 1억 2000만 회 이상 주문에서 일회용품 구입비 153억 원, 쓰레기 처리비용 32억 원을 절감한 효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6월부터는 한발 더 나아가 배달의민족, 요기요, 쿠팡이츠 등 배달앱 3사 모두 별도 요청이 있을 때만 일회용 수저를 제공하기로 했다.

최혜규 기자 iwill@busan.com
어울림 마을공동체는 아이스팩 재사용 캠페인을 제안하고 세척 봉사도 했다(위). 아래는 아이스팩을 재사용하는 구포축산물도매시장 상인들. 어울림 제공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

    실시간 핫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