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선물하고 떠난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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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일 90세로 선종한 천주교 전 서울대교구장 정진석(1931~2021) 추기경은 1970년 39세 때 청주교구장이 된 최연소 주교였으며, 2006년 고 김수환 추기경에 이어 임명된 두 번째 한국인 추기경이었다.

정 추기경 가족사와 삶에는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 스친다. 그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 조선공산당 조직원으로 3년 감옥살이를 한 뒤 <동아일보> 기자 생활을 하다가 광복 후 월북을 해 북한 정부의 공업성 부상을 지내다가 숙청당했다고 한다.

정진석 추기경 향년 90세로 선종
최연소 주교·한국인 두 번째 추기경
각막·장기 기증으로 참사랑 실천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 마지막 인사
28일부터 명동성당서 추모 미사 거행

정 추기경이 사제가 된 직접적인 계기는 한국전쟁 때 목도한 숱한 죽음이었다. 발명가를 꿈꾸며 서울대 화학공학과를 다니던 1950년 한국전쟁이 터져 국민방위군에 소집돼 장교로 복무하면서 매일매일 곁에서 죽음을 지켜보았다. 남한강을 건너다가 얼음이 깨져 부대원이 바로 뒤에서 물에 빠져 죽었고, 또 바로 옆에서 지뢰를 밟고 죽은 부대원을 지켜봤고, 극악한 국민방위군 사건으로 숨진 숱한 주검을 보고서 “나의 것이 아닌 이 생명, 내 생명의 뜻을 깨달아야 한다”는 기도를 지니게 됐다. 강산을 피로 물들인 그 지독한 전쟁에서 고인은 ‘모두를 위한’ 사제의 길로 나아갔던 것이다.

서울 종로구 출생인 정 추기경의 친가와 외가 모두가 4대째 독실한 천주교 집안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에 3년간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 미사를 다녔는데 그때 “사람들이 잠든 지금 나는 깨어 있다. 나는 큰일을 하러 간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큰일을 하러 간다는 어릴 적 기억이 한국전쟁을 통과하면서 생명의 뜻을 찾는, 사랑으로 봉사하는 큰일로 승화됐던 것이다.

정 추기경 시신은 천주교 예규에 따라 서울대교구 명동성당 대성전 제대 앞에 마련된 투명 유리관에 안치됐다. 유리관 저쪽 너머로 고인의 모토인 ‘모든 이에게 모든 것(Omnibus Omnia)’이란 구절이 보인다. 고인이 1970년 주교품을 받으며 내건 첫 사목 표어였다. 고인의 세례명은 ‘니콜라오’다. ‘선물을 주는 이’로 알려진 니콜라오는 크리스마스의 대명사인 ‘산타클로스’로 불리기도 한다. 모든 이에게 모든 것을 사랑과 선물로 주고자 했던 고인의 모토와 세례명은 하나로 통하는 것이었다.

모든 것을 주고자 하는 고인의 뜻은 사후 각막과 장기 기증으로 이어졌다. 단서도 달았다. 노령으로 인해 효과가 없다면 연구용으로라도 사용해달라고 했다. 서울대교구에 따르면 그의 선종 뒤 안구적출 수술이 진행됐다고 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28일 새벽 서울 명동성당 대성전에서 거행된 첫 추모 미사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아버지였다면, 정진석 추기경은 어머니와도 같이 따뜻하고, 배려심이 많았고, 우리들을 품어주셨다”고 고인을 말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교회와 가난한 이들을 위해 선물을 주셨다”고 회고했다.

정 추기경은 두 가지 말을 남겼다. 생전에 젊은 사람들에게는 “나만을 위해 살지 말고 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우리 민족 전체를 위해, 인류를 위해 살 수 있는 큰 인물이 되어 달라. 그러기 위해 뼈를 깎으며 실력을 키우고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리고 이 세상 인생의 소풍을 마치고 떠나면서 모든 이들에게는 “감사합니다. 행복하세요”라는 간단하고 소중한 말을 남겼다.

서울대교구장으로 치러지는 정 추기경 장례는 주교좌성당인 명동대성당에서 5일장으로 거행될 예정이다.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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