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말 광] < 904 >외눈 의원들의 헛발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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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원 교열부장

‘맨체스터 대성당은 위엄과 엄숙함을 자랑하는 여타 유럽 도시의 대성당과 달리, 내부도 유명세에 비해 소박했다.’

어느 책에서 본 구절인데, 잘못 쓴 말이 있다. 국립국어원에서 펴낸 (표준사전)을 보자.

*유명세: 세상에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는 탓으로 당하는 불편이나 곤욕을 속되게 이르는 말.(유명세가 따르다./유명세를 치르다.)

이처럼, ‘유명세’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일’이 아니라 그 때문에 ‘겪어야 하는 불편함’을 가리킨다. 그래서 ‘有名勢’가 아니라 ‘有名稅’인 것. 쉽게 말해 세금이다. 그러니, 마음 놓고 거리를 걷지 못하는 일이나 악성 댓글에 시달리는 게 모두 유명세인 것. 말뜻을 정확히 모르면 헛발질하기 십상이다.

얼마 전 추미애 전 장관이 ‘자유로운 편집권을 누리지 못하고 외눈으로 보도하는 언론이 시민 외에는 눈치 보지 않고 양눈으로 보도하는 뉴스공장을 타박하는 것은 잘못’이라고 페이스북에 올리자, 정의당 장혜영 의원이 ‘외눈’은 ‘장애비하표현’이라며 사과하라고 나섰다.

한데, 이 주장에는 무리가 있다. 표준사전을 보자면, ‘외눈’은 ‘짝을 이루지 않은 단 하나의 눈(외눈 도깨비)’이나 ‘두 눈에서 한 눈을 감고 다른 한 눈으로 볼 때 뜬 눈(외눈으로 목표물을 겨누다)’을 가리킨다. 그냥 ‘둘’이 아니고 ‘하나’라는 뜻인 것. ‘애꾸눈’(이 말도 비하는 아님) 얘기가 아니다. 이걸 두고 ‘단어의 사전적 의미가 중요한 게 아니라’며 비하 발언이라고 한다면, 내키는 대로 사전 정의를 바꾸겠단 얘기가 된다. 암만 ‘정의’당이지만…. 이러다간 ‘일목요연’도 장애 비하가 될 판이다. 하여튼, 추 전 장관이 사전 뜻풀이를 인용하며 오독과 왜곡이 유감스럽다고 하자, 이번엔 민주당 이상민 의원이 이렇게 반박했다.

‘‘외눈’이 국어사전에 있음을 근거로 비하 표현이 아니라 했는데 그러면 ‘절름발이’ ‘난장이’ 등도 국어사전에 있는데 그렇게 표현하는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요?’

하지만 이 역시 헛발질이다. 표준사전을 보자.

*절름발이: 한쪽 다리가 짧거나 다치거나 하여 걷거나 뛸 때에 몸이 한쪽으로 자꾸 거볍게 기우뚱거리는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난쟁이(←난장이): 기형적으로 키가 작은 사람을 낮잡아 이르는 말.

이렇게, 국어사전은 절름발이와 난쟁이를 ‘낮잡아 이르는 말’로 못 박아 놓았다. 외눈과는 전혀 다른 항렬인 것. 사실 따지고 보면,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눈이나 사실과 다르게 보는 눈도 ‘외눈’이랑 다를 바 없다. 게다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이목을 집중시키는 바람에 달은 어디론가 멀리멀리 도망가 버렸으니….

jinwoni@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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