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여는 시] 인플루엔자 / 조성래(19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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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째 황사가 몰아친다. 항구도시의 여기저기 화재가 일어나고 살인사건이 번진다. 미친개들은 아무데서나 사람을 물고 그때마다 엠뷸런스가 비명을 지른다. 오래도록 비는 내리지 않는다. 도시의 옥상에서 검은 마스크가 예사로 떨어지고 철거민들의 절규는 불 속에서도 투항하지 않는다. 문 닫은 공장 굴뚝에서 우울한 구름들이 중얼거린다. 거리마다 불륜이 식을 줄 모르고, 불의 神은 대보름 근처에서 가혹한 심판을 내린다. 도시의 변두리에서부터 家長들이 앓아눕는다.

-시집 (2014) 중에서-

박테리아인 세균은 그 자체가 생명체이지만 바이러스는 세포 속으로 들어가 증식하면서 인간의 몸으로 침투되는 유전자만 있는 비생명체이다. 물질문명의 발달과 개발이라는 이름의 환경 파괴 속에서 인류는 낯선 숙주와 자주 만나게 되고 낯선 바이러스들이 주기적으로 인류를 공격하게 된다. 인류의 어두운 미래를 예견하는 많은 학자들은 그 원인으로 기후재앙과 바이러스를 들고 있다. 그러나 자연과 주위 생명을 공존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정복의 대상으로 삼으며, 과학과 문명의 발달에 힘입어 점점 증식되어가는 마음 속 욕망바이러스가 더 큰 원인일 것이다. 상상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현실화시켜버리는 인류의 위대한 능력마저도 이제는 질병으로 전이되는 세상이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바이러스를 찍어내고 변이시킬 수 있는 현실 앞에서, 이제는 인류의 욕망이 바벨탑 붕괴 직전에 온 것이 아닌가 우려하는 시인의 시선마저도 두렵다.

이규열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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